제천 뱅크크릭·핸드앤몰트·크래프트 루트 등 자체 홉밭 일궈
수제맥주 붐과 함께 국적 갖춘 맥주에 신경쓰는 양조장 증가

제천에서 벨기에 스타일의 맥주를 생산하고 있는 뱅크크릭 양조장은 지역의 농민들과 함께 대규모 유기농 홉단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생산중인 맥주의 상당부분에 자신들의 홉을 활용할 계획이다. 사진은 양조장 앞에 심어진 홉과 홉꽃
제천에서 벨기에 스타일의 맥주를 생산하고 있는 뱅크크릭 양조장은 지역의 농민들과 함께 대규모 유기농 홉단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생산중인 맥주의 상당부분에 자신들의 홉을 활용할 계획이다. 사진은 양조장 앞에 심어진 홉과 홉꽃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맥주는 보리와 홉, 그리고 물과 효모가 있으면 만들어진다. 모든 재료가 다 중요하지만, 미국에서 크래프트 맥주 붐이 일 수 있었던 핵심 동인은 홉 덕택이다.

가벼운 아메리카 스타일의 라거밖에 몰랐던 국내의 ‘맥알못’들에게 맥주 맛의 신세계를 열어준 것도 홉이라고 할 수 있다.

5~6미터는 훌쩍 넘을 만큼 키가 큰 다년생 넝쿨식물인 홉의 수확철이 다가왔다. 대형 맥주회사가 됐든 소형 크래프트 양조장이 됐든 모두가 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 홉의 수확철이 무슨 관계인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홉을 국산화하기 위해  홉을 키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맥주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만들어진 알코올음료가 아니어서 재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지만, 국산 재료를 이용해 맥주에 국적을 부여하려는 양조장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홉은 흔히 맥주를 마실 때 느끼거나 맛볼 수 있는 아로마라는 맥주의 향과 풍미, 그리고 쓴맛을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거품이 오래 유지되도록 하며, 발효과정에서 효모 이외의 다른 박테리아 등이 오염되지 않도록 천연 방부제의 역할도 한다. 즉 몰트, 싹을 틔운 보리는 맥주의 바디감과 알코올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면 홉은 맥주의 스타일별 특징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물론 현재 홉농사를 짓는 곳은 손을 꼽을 정도다. 크래프트 양조장을 운영하면서 국산 재료를 넣어 자신들의 맥주를 만들고 있다는 스토리텔링까지 염두에 둔 곳과 크래프트 맥주에 대해 장기적으로 수요가 늘 것으로 예상한 농부들이 특용작물로 홉뿌리를 수입해 농사를 짓는 몇 곳이 있을 뿐이다. 

남양주에서 크래프트 맥주를 생산하고 있는 핸드앤몰트는 5년차 홉농사를 짓고 있는 보기 드문 양조장이다. 가을 한 시즌 생산하는 맥주이지만 9월에 시판되는 ‘하베스트 IPA’에는 자체 수확한 홉으로 향과 맛을 더하고 있다.
남양주에서 크래프트 맥주를 생산하고 있는 핸드앤몰트는 5년차 홉농사를 짓고 있는 보기 드문 양조장이다. 가을 한 시즌 생산하는 맥주이지만 9월에 시판되는 ‘하베스트 IPA’에는 자체 수확한 홉으로 향과 맛을 더하고 있다.

현재 브루어리를 운영하면서 홉 농사를 겸한 곳은 네 곳 정도. 가장 규모가 큰 곳은 제천의 뱅크크릭브루잉(대표 홍성태)이다. 지난해까지 브루어리 인근 농부들을 중심으로 작목반을 구성해 3000여평 규모의 홉농사를 지었으며, 올해는 별도의 독립 법인을 만들어 홉 농사의 규모를 확대한 케이스다. 그리고 브루어리에서 사용할 홉을 유기농법으로 재배해 자신들의 맥주에 사용할 계획이다. 

뱅크크릭에서 재배한 홉은 ‘크로스비’라는 품종이며, ‘솔티8’과 ‘솔티 아이피에이’ 등에 사용하게 된다. 홍 대표는 내년에는 또 다른 지역에 2만평 이상의 홉농장을 조성할 예정이며, 제천시에도 1만평 규모의 홉밭을 일굴 생각이다. 현재의 계획이 추진되면 내년부터는 생산하는 맥주의 상당부분을 자체 생산하는 홉으로 커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남양주에 브루어리가 있는 핸드앤몰트(도정한 대표)도 5년차 홉농사를 짓고 있는 양조장이다. 재배하고 있는 품종은 시트러스 향과 아로마가 아주 강한 센테니얼 홉으로 유명한 구대륙 홉 중 하나이다. 물론 재배하는 양은 250주로 상징적이지만, 매년 수확하는 홉은 핸드앤몰트의 ‘하베스트IPA’에 사용하고 있다. 

강원도 고성에서 크래프트맥주를 생산하고 있는 크래프트루트도 케스케이드와 CTZ 두 품종을 올해 첫 식재해서 수확을 했다. 홉은 3년차가 될 때까지는 뿌리를 가지치기하며 관리해야 하는데, 양조장을 준비하면서 같이 홉밭을 일궈와 올해 첫 수확물로 ‘속초플러스IPA’에 사용했다고 한다. 이와 함께 부산에서 맥주를 양조하고 있는 고릴라 브루잉도 자체 홉밭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들 양조장 중에서 가장 빠르게 지난달 말 홉 수확행사를 가졌다. 

이밖에도 유기농 홉을 전문으로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있다. 그 중 가장 규모가 큰 곳은 ‘맥주만드는 농부’라는 농업법인을 만들어 제천에서 홉을 재배하고 있는 장동희 대표. 그는 올해 4000평 규모에 캐스케이드와 사츠, 센테니얼 등의 홉을 재배했다. 지난 주말 홉축제를 겸해 홉을 수확하는 행사를 갖기도 했다. 

또한 남양주에서 농장 한편에 홉을 재배하고 있는 강지훈 대표(엉클 홉)는 케스케이드와 윌라멧, CTZ 등 세 종류의 홉을 재배하고 있으며 지난해부터 경상북도 의성에서 2종류의 홉을 실험 재배하고 있는 홉이든(HOPEDEN) 등이 홉 국산화에 선두에 선 농부들이다. 

국산 홉의 역사
홉에 대한 수입자유화 조치가 있기 전까지 국내산 맥주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홉은 대관령에서 생산한 홉으로 자급자족됐다. 1987년에는 소량(2.9톤)이나마 수출을 했을 정도였으니 홉의 재배 규모가 상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값싼 외국산 홉이 수입되면서 국산 홉의 명맥은 끊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한반도에 처음 홉이 재배된 것은 1934년경. 개마고원 특히 혜산 일대가 홉 재배의 최적지였다고 한다. 지금도 북한의 맥주는 개마고원산 홉으로 만들어지고 있으며, 체코의 기술진이 들어가 홉과 관련한 노하우를 전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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