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양주 배우다 의기투합한 30대 젊은이 4명 성수동에 술도가 내
전통주 방식 막걸리 술맛에 입소문 타고 전통주점서 찾는 이 급증

서울쌀과 누룩으로 전통주 방식으로 술을 빚는 양조장이 서울에 등장했다. 막걸리가 좋아서 전통주를 배우고 결국에는 양조인의 길로 접어든 네 사람의 청년들이 조용히, 그러나 굵직한 선을 그리며 서울 막걸리 시장을 노크하고 있다. 사진은 한강주조 양조공간에서 찍은 한강주조 가족들. 왼쪽부터 이한순 실장, 정덕영 실장, 고성용 대표, 이상욱 이사 순 (사진 : 한강주조)
서울쌀과 누룩으로 전통주 방식으로 술을 빚는 양조장이 서울에 등장했다. 막걸리가 좋아서 전통주를 배우고 결국에는 양조인의 길로 접어든 네 사람의 청년들이 조용히, 그러나 굵직한 선을 그리며 서울 막걸리 시장을 노크하고 있다. 사진은 한강주조 양조공간에서 찍은 한강주조 가족들. 왼쪽부터 이한순 실장, 정덕영 실장, 고성용 대표, 이상욱 이사 순 (사진 : 한강주조)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재기발랄한 청년들이 전통 가양주를 배워 막걸리양조장을 열었다. 그것도 ‘장수’라는 대한민국 대표 막걸리 브랜드가 골리앗처럼 우뚝 서 있는 서울에 말이다. 주세 징수의 편의성 때문에 군소 양조장의 통폐합을 추진했던 60~70년대의 국세청 정책에 따라 줄곧 줄어들기만 했던 술도가들이 최근 증가세로 전환되기는 했지만, 판매 목적으로 주류제조 면허를 서울에 낸 것은 50여년 만에 이곳이 처음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 술도가의 이름은 성수동에 위치한 한강주조(대표 고성용). 지난해 12월에 사업자등록을 내고 올 6월부터 본격 생산에 들어간 신생 양조장이다. 그런데 이 양조장의 독특한 이력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이들은 서울 사람도 잘 모르고 있는 서울쌀(브랜드명 경복궁쌀)로 술을 빚고 있다. 서울 강서구에서 우렁이농법으로 재배되는 이 쌀은 다른 쌀보다 가격도 비싸다. 20kg 한포에 6만5000원을 넘어선다는 것. 특히 술을 빚는 쌀은 최상등급을 사용하기 때문에 가격이 더 높다는 것이 한강주조 고 대표의 설명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상업양조장들이 입국(흩임누룩) 방식으로 술을 빚고 있는데, 이곳은 전통 누룩을 입국과 함께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술을 빚는 재료는 쌀과 물과 누룩, 그리고 약간의 효모가 전부다. 단맛을 내기 위해 많은 양조장들이 선택하는 인공감미료는 이곳에선 찾을 수 없다. 그런데도 단맛이 긴 여운을 남기는 것이 이 술도가 술맛이다.

이를 위해 한강주조는 가양주 방식으로 세 번 고두밥을 지어 술을 빚는 삼양주로 술을 생산한다. 한 달 동안 삼양을 하기 위해 양조를 책임지고 있는 정덕영 실장의 팔목은 쉴 틈이 없다고 한다. 술을 빨리 발효시키기 위해 하루에도 수차례씩 도봉(술덧을 젓는 도구)을 휘저어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강주조는 서울쌀로 술을 빚고 누룩을 발효제로 사용하며, 전통주 제조 방식으로 술을 양조하는 서울 유일의 술도가라는 타이틀을 갖게 된 셈이다.

이렇게 서울 시장을 노크하기 위해 선택한 전략 하나하나가 일반의 상식을 뒤엎고 있는 양조장. 그래서 힙한 젊은이들의 선택을 받고 있는 것일까. 출시 두 달 만에 한강주조의 ‘생나루 막걸리’는 50여 전통주 전문주점에 납품되고 있다. 한강주조에서 생산되고 있는 술은 ‘생나루 막걸리’ 한 종이다. 신생 양조장이지만, 술맛은 단조롭지 않다. 전통주 방식을 지키고 있는 만큼 손길도 많이 간다. 말 그대로 ‘수제(크래프트)’다. 기계의 힘보다는 사람 손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특히 술이 발효되고 숙성되는 과정만큼은 사람 손으로 술이 익어간다.

감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순수하게 쌀이 가진 단맛과 감칠맛으로 술맛을 내는 것이 전통주 제조기법이다. 한강주조는 고문서에 있는 술빚는 법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젊은 이들이 즐길 수 있는 술을 개발했다. 사진은 한강주조의 ‘생나루막걸리’ 이미지 사진 (사진 : 한강주조)
감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순수하게 쌀이 가진 단맛과 감칠맛으로 술맛을 내는 것이 전통주 제조기법이다. 한강주조는 고문서에 있는 술빚는 법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젊은 이들이 즐길 수 있는 술을 개발했다. 사진은 한강주조의 ‘생나루막걸리’ 이미지 사진 (사진 : 한강주조)

그렇다면 ‘생나루 막걸리’가 전통주점에서 조금씩 이름을 알리며 찾는 손이 많아진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한 병에 근 1리터(935밀리리터) 가까이 담겨 있어 여럿이서 한잔 이상을 나눌 수 있고, 젊은이들이 싫어하는 누룩향도 희미하다. 알코올 도수는 프리미엄 막걸리와 달리 일반적인 막걸리처럼 6도다. 하지만 낮은 도수에도 불구하고 목을 넘길 때 느껴지는 단맛이 술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준다. 게다가 입안을 가볍게 채워주는 전통주의 느낌을 목넘김 이후에도 찾을 수 있다. 감미료의 도움 없이 순전히 곡물의 단맛을 최대한 이끌어냈기에 가능한 술맛인 것이다.

한강의 성수동, 옥수동, 금호동, 약수동 등은 모두 물과 관련된 지명이다. 그리고 옥수동과 성수동 인근의 한강은 예전에 ‘동호’라고 불렀다. 마포 앞 한강을 ‘서호’라 부르는 것과 대별되는 이름이다. 나루에는 길손들의 피로를 풀어주는 술이 있었다. 그 술의 전통을 담기 위해 양조장의 이름(한강주조)은 물론 술의 이름(생나루 막걸리)까지 100년 전 우리 막걸리의 전통이 살아 있던 시절의 기억을 소환해서 2019년에 적용하고 있다. 그것도 평균연령 34.8세의 젊은이 네 사람이 말이다.

고 대표와 한강주조를 같이 이끌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가양주연구소라는 전통주 전문교육기관 출신이다. 막걸리가 좋아서 전통주를 빚고자 선택한 길이 전문 양조자가 된 것이다. 지금은 막걸리 하나만 상품으로 내고 있지만 양조장 한편에선 10도 이상의 알코올감은 느낄 수 있는 탁주와 청주(주세법상 약주)를 시범 양조를 하고 있다. 또한 이들의 뜨거운 열기를 담아낼 증류주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한강주조에 관심이 가는 까닭은 젊은이의 시선에서 우리 전통주를 해석한 만큼 보다 접근하기 편한 우리 술이 만들어지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이다. 그리고 가성비 좋은 가격(한 병 6000원, 주점 가격 1만2000원 안팎)도 한강주조에 머문 시선을 거둘 수 없게 한다. 애주가라면 찾아서 마셔볼 그런 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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