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과학은 알아내고, 산업은 응용하고, 인간은 순응한다. 과학은 발견하고, 천재는 발명하고, 산업은 응용하고, 인간은 새로운 물건에 적응하고, 변화를 겪는다.”

지난 1893년 시카고 국제박람회의 안내문이다. 21세기의 시선으로 읽어도 전혀 어색함이 없는 ‘현대’의 모습을 제대로 표착한 문장이다. 게다가 과학과 기술, 그리고 인간의 관계도 적확하다. 연구자는 원리를 밝혀내고 발견 혹은 발명된 기술은 산업에 응용되며 인간은 새롭게 출시된 물건에 적응하면서 변화하는 삶을 살아간다. 이것은 120년의 시간이 흐른 오늘날에도 동일한 삶의 방식이다.  

시카고 국제박람회가 유명해진 것은 전기와 조명의 등장일 것이다. 시카고를 일약 ‘빛의 도시’로 변신시킨 전기의 등장은 한마디로 문명사적 전환을 의미하는 사건이었다. 고래 기름으로 거리의 불을 밝혔던 도시의 가로등이 석탄가스로 교체되면서 서구의 주요도시의 저녁은 가스등 불빛이 점령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난해 개봉했던 <메리 포핀스 리턴스>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도시의 불빛은 자전거를 타고 가스등의 불빛을 켜고 끄는 청년의 분주한 손길에서 시작됐던 것이다. 

하지만 전기가 등장하고 이를 생산할 수 있는 발전기와 전구가 발명되면서 도시는 새로운 빛의 공간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리는 청년의 분주한 손길을 대신해서 발전기와 이를 공급할 복잡한 전기선로, 그리고 이를 켜고 끌 스위치만 있으면 손가락 움직임 한 번으로 밤은 완벽하게 정복됐던 것이다.

물론 전기의 등장은 이중적인 감정의 태도를 만들어냈다. 한편에선 밤을 하얗게 밝히는 불빛이 신기하고 놀라운 체험이었지만, 전기는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공포도 같이 가져다줬다. 

시카고 박람회가 개최되기 2년 전 미국의 백악관에 전등과 초인종이 설치됐는데, 당시 미 대통령의 가족은 스위치나 버튼에 손을 대지 못하고 밤새 불을 켜두었다고 한다. 다음날 직원들이 와서 스위치를 내렸을 만큼 전기는 무서움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최근 상영 중인 <커런트 워>는 시카고 박람회장을 빛의 공간으로 바꿔놓은 전기와 전등과 관련한 당시의 내용을 충실히 보여주는 영화다. 에디슨과 테슬라의 교류와 직류를 두고 벌이는 경쟁, 그리고 웨스팅하우스까지 전류 전쟁에 합류하면서 미국의 1880~1890년대는 전기와 전등의 시대를 보내게 된다. 

에디슨은 직류 전기를 활용해 자신이 발명한 전등에 불을 밝혔는데, 문제는 멀리 떨어진 곳까지 전기를 보내기 위해선 2.5킬로미터 마다 발전소를 둬야했다. 이런 문제점을 인식한 테슬라는 발전소에서 보내는 전기의 전압을 대폭 높여 멀리까지 전기력을 전달하는 교류에 대한 아이디어를 개진했지만, 감전의 위험성을 노출하고 있었다. 

당시 상황에서 최적의 선택은 두 사람의 아이디어를 합치는 것. 하지만 에디슨의 자존심은 직류의 문제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교류를 선택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둘 간의 갈등을 최종적으로 해소한 인물은 에디슨도 테슬라도 아닌 J.P. 모건이었다. 

막강한 자본의 힘을 가지고 미국의 도금시대를 풍미했던 은행가 J.P. 모건은 에디슨의 전지회사와 테슬라가 속해있던 웨스팅하우스를 합병시켜 제너럴 일렉트릭을 설립한다.

자신의 집에 전등을 밝혀준 사람은 에디슨이었지만, 모건은 당대 최고의 회사로 성장할 전기회사 이름에서 에디슨을 완전히 지워버린다. 그리고 그의 선택에 의해 전기의 표준은 교류로 정해지게 된다. 

여기서 에디슨의 문제점을 ‘인지편향’에 빠진 천재로 비유하곤 한다. 독학으로 전기관련 기술을 익힌 에디슨은 자수성가형 발명가들이 흔히 빠지는 함정에 빠지고 만 것이다. 최고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회적 평판이 눈을 가리게 되고 의사결정마저 왜곡시키고 만다. 노자의 말 ‘득어망전(得魚忘筌)’처럼 물고기를 잡으면 통발을 버렸어야 하는데, 에디슨은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J.P. 모건은 냉정하게 숫자를 바라본다. 그리고 전류전쟁의 보이지 않는 승자가 된다.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