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법무장관 임명 논란에서 놓치지 말아야할 포인트
상대 실수, 자신의 호기가 되지 못했다면 에토스 문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일반적인 사람들은 성공한 리더들이 건전한 윤리관을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범인으로서 오르지 못한 성공의 자리에 대한 경외심도 있었겠지만, 오르고 싶다는 자신의 욕망이 투영된 결과일 것이다. 물론 이러한 감정의 근간에는 권선징악적인 삶의 에토스가 작용한 까닭도 컸을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공한 리더를 독자의 입장에서 바라본다. 오랜 시간 간난신고를 겪으면서 이겨냈을 각종 고난을 연상하며 마치 자신이 그 일을 겪은 것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거울뉴런이 작용한 탓이다. 이 순간 가장 큰 작용원인으로 윤리적 삶의 태도를 떠올리게 된다. 그것이 성공한 리더에 대한 에토스적 독법이 되는 것이다. 

즉 리더의 말과 행동이 아무리 이치에 맞다 할지라도 평소의 생활에서 도덕성이 의심받게 된다면, 그 말과 행동은 헛된 구호와 위선으로 해석된다. 그 순간 성공은 물거품이 되고 지금까지 확보한 지위까지 잃을 위기에 봉착한다. 이런 상황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성공’이라는 이름 속에서 최소한의 윤리적 통과의례를 무사히 마쳤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정치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성공과 윤리적 삶이 등가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고, 확인하고 있다. 

도덕성은 혁명 혹은 혁신의 필요조건이다. 변화는 사람의 마음을 사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의 시대를 살펴보자. 당시 로마교황은 메디치 가문 출신의 레오 10세.

그는 피렌체에서 보고 배웠듯 문예부흥을 꿈꾸며 바티칸을 예술과 문화로 치장하길 원한다. 교회의 권위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성 베드로 대성당도 완성시켜야했다. 그 결과가 면죄부로 연결된다. 상대역은 독일인 사제 마르틴 루터가 맡았다. 

그는 비텐베르크 성의 교회당 문에 ‘95개 조항’의 대자보를 걸면서 종교개혁의 발단을 마련한다. 거대한 교황청 및 가톨릭 세력과 맞싸움을 벌이기엔 중과부적인 루터. 하지만 그의 평소 삶의 태도는 그에게 에토스의 힘을 실어줬고, 면죄부 등을 비판한 그의 논리는 교황청을 압도했다. 그리고 결과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리더로서 루터가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들이다. 사람들은 리더가 말하는 대의가 정당하고 옳다는 확신이 서기 전까지 움직이지 않는다. 이 때 그 대의를 뒷받침해주는 것이 평소 그의 말과 삶의 태도다.

그리고 주장하는 대의에 동의하는 세력의 규모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수미일관한 태도가 확인되고 대의를 같이할 사람들이 숫자가 늘면 늘수록 주장하는 말의 힘은 강화된다. 이것이 루터가 거대한 가톨릭교회와의 승부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원인이다. 

그렇다면 최근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과 관련한 논란을 살펴보자. 내용은 모두가 잘 알고 있으니 생략한다. 여기서는 논란의 결과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하고자 한다. 

조 장관이 과거에 해왔던 말과 행적은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되기 이전의 그에게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달포를 훌쩍 넘기는 동안 보도된 뉴스(가짜 뉴스를 포함)들은 그에 대한 우호적 평가를 거두게 했다. 그나마 후보자 신분으로 가진 기자간담회와 인사청문회를 거치면서 악화된 평가를 조금이나마 수습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정치적 논란과 무관하게 이러한 성격의 싸움에선 승자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싸움에는 승자가 없다. 반대 세력에게도 국민들은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도덕성이다. 

국민들은 아직까지 야당에게 마음을 줄만큼 그들에게서 충분한 에토스를 확인하지 못했다. 그런 결과가 다음 총선에서 거대 정당에게 투표하지 않겠다는 표심으로까지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상대방의 실수에서 비롯된 기회가 자신에게 호기로 작용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자신의 에토스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리더들의 평소 언행이 중요한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