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취 해소 비용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까지 던져 준 영화
알코올 탐닉하도록 진화된 까닭에 술은 영원한 문학소재

2009년 개봉한 영화 ‘행오버 1’의 포스터. 한국에선 ‘행오버 2’가 개봉됐다. (사진=네이버영화)
2009년 개봉한 영화 ‘행오버 1’의 포스터. 한국에선 ‘행오버 2’가 개봉됐다. (사진=네이버영화)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미국 서부의 도시 라스베이거스가 유명한 것은 카지노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도시의 이름이 들어갔거나 이 도시를 배경으로 촬영한 영화들의 공통점은 도박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빠짐없이 술이 등장하고, 때로는 그 술이 주인공인 경우도 많다. 

더스틴 호프만의 서번트 증후군 연기로 기억되는 영화 ‘레인맨’이나 지난 2013년에 개봉된 ‘나우 유 씨 미’의 경우에서 라스베이거스는 도박과 마술쇼 등 유흥의 관점에서 소개된다. 하지만 마이크 피기스 감독의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나 토드 필립스 감독의 ‘행오버 1’ 등에선 술이 주인공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술은 핵심 은유의 대상이다. 

미국 청년들의 총각파티의 주무대이자, 카지노 등에서 자유롭게 음주할 수 있는 환경 등 라스베이거스는 그런 점에서 이론의 여지가 없는 술의 천국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반대로 최고의 숙취 도시라는 말과도 같다. 

숙취는 술에 흠뻑 취한 상태를 의미한다. 그리고 술을 마셔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봤을 상태가 숙취다. 이런 날은 예외 없이 다음날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할 정도로 극심한 속쓰림과 두통, 여기에 무기력증과 블랙아웃 등의 불쾌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숙취 상태의 폐해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영화가 R등급 코미디물인 ‘행오버 1’(2009년 개봉)이다. 우리나라에선 개봉되지 않았지만 미국에선 제작비의 10배 이상의 흥행실적을 거두며 역대 R등급 코미디물 1위를 기록한 영화이기도 하다.  

‘행오버’는 우리말로 ‘숙취’를 뜻한다. 라스베이거스로 총각파티를 떠난 네 사람의 사내들이 만취한 뒤 사라진 자신들의 기억을 조각퍼즐 맞추듯 찾아내는 과정에서 벌어진 각종 헤프닝이 이 영화의 핵심 소재다. 

물론 영화는 코미디답게 어렵사리 총각파티를 마치고 와서 결혼식을 치르는 해피앤딩이다. 더욱이 이 영화의 박스오피스 성적(1위) 덕분에 영화의 주인공들인 브래들리 쿠퍼와 자흐 갈리피아나키스, 에드 헬름스는 단번에 A급 배우의 반열에 올랐으며, 코미디 영화 부흥의 불씨가 되기도 했단다. 

하지만 이 영화가 주는 오락적 즐거움은 만취에 따른 각종 해프닝으로 펼쳐지지만 이것보다는 숙취해소비용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운다는 점에서 영화의 메시지는 강력하다.

술 취한 사람들이 펼치는 코믹한 상황들은 분명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재미를 제공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3탄까지 발표될 만큼 흥행 측면에서도 성공했다. 하지만 숙취에 따른 사회적 비용에 대한 고찰이라는 순기능에서 이 영화가 훨씬 많은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다. 주폭 문제는 물론 음주운전 문제 등 술과 관련한 부정적 이미지는 바로 숙취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숙취의 폐해가 현대사회에 와서 도드라진 문제는 아니다. 이미 고전의 세계에선 수없이 많은 숙취가 복수로 연결돼 개인의 파멸은 물론 조직의 붕괴로까지 이어져왔다. 다만 숙취해소를 위한 사회적 비용이 요즘처럼 막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선이 관대했던 것 뿐이다.

유명한 숙취 사건 중 하나는 성경에 등장하는 노아의 만취일 것이다. 홍수가 끝나고 방주에서 내려 첫 번째 한일이 포도나무를 심는 일이었고, 그 포도로 술을 담궈 마시고 만취해 정신을 잃고 벌거숭이가 돼 잠이 들었던 것. 이를 아들 함이 보았다는 사실에 놀라 그에게 벌을 주었는데 가혹하게도 함의 네 아들 중 하나인 가나안과 그의 후손들에게 모두 천한 종이 되도록 저주를 퍼붓고 말았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도 만취는 자주 등장한다. 오뒷세이아에선 만취 뿐 아니라 마약에 의한 환각까지 인류사의 오랜 전통을 가진 환각과 만취의 종합선물세트같은 스토리들이 가득 담겨져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오뒷세이가 외눈박이 괴물 퀴클롭스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포도주로 만취하도록 만든 사건일 것이다. 

이밖에도 숙취의 사례는 수많은 문학작품의 소재가 됐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약방의 감초만큼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아마도 술을 마시는 한 숙취는 영원히 문학과 예술의 중심 소재가 될 것이다. 인류가 수많은 세월동안 알코올을 탐닉하도록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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