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식 윤리적 사각지대 존재, 돈과 관련되면 더 심해져
우리은행·하나은행 등 DLS·DLF 예상손실액 3513억원 규모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기업의 부정행위는 기업의 이미지 실추로 직결된다. 이미지가 나빠진다는 것은 실적도 그렇게 된다는 뜻이다. 경우에 따라 기업의 존립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미국의 엔론 회계부정 사건이나 월드컴 문제는 부정행위의 결과를 잘 보여주는 고전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연전 국내시장에서도 문제가 됐던 독일 폭스바겐사의 배출가스 조작도 부정행위의 결과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은행권이 시끄럽다. 해외 금리연계형 파생결합상품(DLS·DLF)과 관련,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의 대규모 원금 손실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은행장들을 만난 자리에서 재발방지를 촉구하면서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섰고, 우리은행의 손태승 행장은 재발방지는 물론 제도 개선 등을 약속하며 대고객 사과문을 발표한 데 이어 KEB하나은행의 지성규 행장도 소비자 보호를 위한 다양한 대책을 약속하며 사과에 나섰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의 손실사태 검사 중간발표를 살펴보면 사과로 조기 진화가 가능할까하는 생각이 든다. DLF 판매 5건 중 1건은 손실 위험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고, 상품 판매를 경고하는 내부의 반대 의견도 무시했으며, 상품의 심의기록까지 조작한 정황이 드러났다고 한다. 

이 내용에 따르면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그리고 증권사 3곳과 자산운용사 5곳에서 210개의 DLF를 설정해 3243명의 투자자에게 7950억원을 판매했고, 여기서 발생할 예상손실액은 3513억원 규모라고 한다. 

이처럼 내부에서의 경고까지 무시하면서 고객에게 투자를 권유해 고객에게 거액의 손실을 입힌 까닭은 무엇일까. 그리고 부정한 행위가 드러날 경우 관련자는 물론 은행장과 임원까지 책임을 져야하는데도 이러한 의사결정을 내리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또한 부정행위가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은 왜일까. 특히 이 같은 투자를 권유한 은행원은 그 당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금융회사는 신뢰를 기반으로 존립하는 기업인데도, 치명적인 내상이 불가피한 선택을 한 것을 보면 인간의 윤리의식은 보편적이며 일상적인 것은 아닌 것 같다.

만약 일상적이라면 부당한 지시나 잘못된 판단에 대해 누군가는 잘못을 인식하고 프로세스를 중단시켰을 것이다. 

소포클레스의 희곡 <안티고네>에서 테베의 지도자 크레온은 경쟁자에 대한 복수차원에서 그의 시신을 거두지 말라고 포고령을 내린다. 2500년 전의 관습법에 따르면 죽은 자의 시신은 반드시 거둬 장례를 치러야 한다. 그것이 하늘이 정한 질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왕이 자연법에 어긋난 실정법을 발효한다. 

이 순간 크레온의 포고령을 위반하고 시신을 거둔 사람은 안티고네였다. 안티고네라고 고뇌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녀는 죽음을 각오하고 왕명을 어긴다. 그리고 안티고네와 크레온 모두 비극적 결말로 치닫는다. 

기업의 부정행위에 대한 행동을 연구하는 덴브룬셀 교수는 조직 내부에서의 부도덕한 조치 내지 윤리적 잣대 등에 대해 연구를 해왔는데, 스스로 생각하는 윤리관을 저버리고 비도덕적 판단에 따르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윤리적 사각지대’로 설명한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적용하는 윤리적 잣대와 타인에게 적용하는 잣대로 다르다며, 특히 경제적 이익이 걸러 있는 경우 이러한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고 말한다. 

크레온은 왕이라는 권위로 자연법을 무시한다. 그러면서 전혀 윤리적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안티고네는 반대로 자연법이 실정법보다 상위에 있다는 믿음 속에서 왕명을 거스른 것에 대해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이러한 생각은 이번 DLS·DLF 사태에서도 적용된다. 실적을 올려야하는 은행의 입장에선 그 순간 윤리적 판단기준을 상실한다. 금감원의 감사에서 드러나더라도 관련 벌칙이 크지 않다고 판단되면 전혀 거리낌 없이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것이다. 

규제와 벌금으로 위법행위를 막으려할 때 사람들은 그 행동의 윤리적 판단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비용을 계산해서 행동을 결정한다. 제도와 법률을 아무리 강화해도 비용편익적 사고가 중심 질서인 사회에선 윤리적 사각지대는 불가피해보인다. 그래서 더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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