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오 대구은행장, 창립식에서 100년 은행 스토리텔링 강조
길가메시 서사시처럼 지혜 모아내 방향과 비전 수립하자 주문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호모 사피엔스보다 덩치도 크고 근육이 발달했다는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우리에겐 네안데르탈인으로 더 익숙한 이 고대 수렵채집인들은 빙하기의 추운 날씨를 잘 견뎌낼 수 있었다. 게다가 뇌의 크기도 호모 사피엔스보다 컸다고 한다. 그런데 호모 사피엔스는 살아남았고,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에게 자신들의 유전자를 약간 남겼을 뿐 어느 순간 지구에서 사라졌다. 

고고학자와 인지과학자 등은 픽션을 만들 수 있었던 호모 사피엔스의 탁월함 덕분에 이러한 결과가 도출됐다고 말한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이를 ‘인지혁명’이라고 칭한다. 아프리카의 한 구석에서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호모 사피엔스들이 지구 전체의 정복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약 7만년 전부터 3만년 전 사이에 출현했던 인지혁명으로 들었던 것이다.

직접 보거나 만지지 못하는 허구의 대상을 집단적으로 상상할 수 있도록 픽션을 만들어 공유하고, 이야기를 통해 공동체의 목표와 생존 방식을 나눌 수 있었던 능력이 지구의 주인을 결정한 것이다.

<이야기의 기원>의 저자 브라이언 보이드도 모방에서 출발한 호모 사피엔스의 예술적 능력은 결국 진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인류 특유의 문화적 능력으로 발현돼 픽션으로서의 이야기를 같이 공유하며 문명을 일궈냈다고 말한다.

이야기는 전설과 설화의 형태로 나오기도 하고, 신화의 모습으로 구체화되기도 한다. 신화는 신의 이야기로 모아지면서 종교로 승화되기도 한다. 이처럼 각각의 영역에서 집단을 심리적 공동체로 형성하는 토대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문자로 처음 그 흔적을 남긴 것은 <길가메시 서사시>이며,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의 형태로 처음 남겨진 문학은 호메로스가 지었다고 하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다. 또한 유대인들에 의해 종교로서 발전해 온 이야기가 바로 <성경>이기도 하다. 이처럼 인류는 다채로운 이야기로 자신들의 지혜를 모아 부족과 민족이 공유하면서 생존해올 수 있었던 것이다.

김태오 DGB대구은행장은 지난 7일 창립 제52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길가메시 서사시>를 언급했다. “5000년 전 ‘길가메시의 서사시’ 점토판에서 삶의 진리를 엿볼 수 있듯 DGB대구은행도 지혜를 모아 나아가야할 방향을 설정하고 비전을 수립해 DGB만의 이야기를 만들자”고 주문한 것이다.

지난 52년의 대구은행 역사가 아버지와 아들, 또 그 아들의 아들까지 이어지는 긴 시간임을 강조하면서 고객과 은행이 함께 일궈낸 역사를 앞으로 100년의 역사로 함께 써내려가자는 김 행장의 이야기는 역사라는 스토리텔링으로 은행 조직원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핵심가치를 지혜로 일궈내자고 말한 것이다.

김 행장은 점토판에 쇄기문자로 기록한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100년 은행의 역사라는 영감을 찾은 것이다. 이 서사시가 담고 있는 이야기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한 축이었던 도시국가 우루크와 불멸을 찾아 헤맸던 이 도시의 왕 길가메시의 만행이다.

불멸을 꿈꿨던 반신반인의 존재 길가메시는 불로초를 찾아 헤매다 결국, 뱀에게 빼앗기고 영생을 구한다는 것이 부질없음을 깨닫고 자신의 궁궐로 돌아와 우루크의 성벽의 위대함을 자랑한다. 자연 앞에서 한 없이 무력한 존재였음을 확인하고 죽음의 문제를 불멸이 아니라 순응하는 것으로 극복하게 된 것이다.

이야기의 가치와 공유의 중요성을 인식한 김 행장의 주문에 DGB대구은행 임직원들은 어떤 형태의 지혜를 모아낼까. 제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현 시점에서 모든 금융회사들은 김 행장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은 자신들이 핵심상품만 가지고 경쟁하는 시대가 아니라 스토리텔링까지도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