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기름과 누룩으로 빚어 곡물 고유의 단맛 가진 강원도 향토주
단풍든 원주 치악산 간다면, 사라지기전에 꼭 들려 맛봐야할 술

원주장에 조청과 엿을 내다 팔기 위해 시작된 황골의 엿과 엿술은 대략 100여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장작불로 직접 가마솥에서 엿을 고는 이현순 할머니의 집이다.
원주장에 조청과 엿을 내다 팔기 위해 시작된 황골의 엿과 엿술은 대략 100여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장작불로 직접 가마솥에서 엿을 고는 이현순 할머니의 집이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설탕이 등장하기 전까지 쌀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 민족에게 인위적으로 단맛을 얻을 수 있는 음식은 조청과 엿, 그리고 술뿐이었다.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꿀은 채취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발효 기술을 발견한 이후 우리 민족은 조청과 엿, 그리고 술을 통해 단맛을 얻었다.

여기서 말하는 발효에 대한 기술이란 누룩과 엿기름 활용법이다. 보리와 밀로 만드는 누룩은 쌀을 술로 만드는데 필요한 최적의 발효제였으며, 보리를 발아시켜서 만드는 엿기름(맥아)은 식혜와 조청 등 단맛의 음식을 만드는 최적의 보조제였다.

그런데 강원도에는 다른 지역과 달리, 누룩과 엿기름을 동시해 사용해서 만드는 술을 두 개나 가지고 있다. 하나는 원주 지역의 ‘엿술’이며, 또 하나는 삼척의 전통주인 ‘불술’이다.

이 두 술은 모두 엿기름을 통해 쌀과 여타 곡물의 당분을 최대한 추출하는 형식으로 술을 빚고 있는 것이다. 산이 많아 물산이 풍부할 수 없었던 강원도만의 척박한 환경을 나름 극복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이 지역만의 발효법일 것이다. 부족한 당화력을 엿기름으로 보충해서 누룩의 힘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나름의 지혜가 모여서 만들어진 발효법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강원도만의 향토 전통주로 만들어지고 있다.

이번에 소개하는 술은 이렇게 엿기름을 이용한 술 중 하나인 원주의 엿술. 100여년을 훌쩍 넘겼을 것으로 예상되는 원주의 엿술은 전문 술도가에서 생산하는 술이 아니다. 치악산 자락의 황골이라는 마을에서 조청과 엿을 가내수공업으로 만들고 있는 민가에서 만들어진 술이다.

지금은 대여섯 가구 정도만 엿을 고아내고 있지만, 한창때는 동네 전체가 매일같이 엿을 고아내고, 술을 빚느라 굴뚝에선 가마솥 지피는 연기가 끊이지 않던 곳이기도 하다.

강원도 원주의 황골 마을은 쌀과 옥수수로 엿과 조청을 만드는 곳이다. 사진은 이곳에서 63년째 엿과 엿술을 빚고 있는 이현순 할머니의 모습. 할머니 앞에 놓여 있는 페트병엔 알코올 도수가 제법 느껴지는 엿술이 담겨져 있다.
강원도 원주의 황골 마을은 쌀과 옥수수로 엿과 조청을 만드는 곳이다. 사진은 이곳에서 63년째 엿과 엿술을 빚고 있는 이현순 할머니의 모습. 할머니 앞에 놓여 있는 페트병엔 알코올 도수가 제법 느껴지는 엿술이 담겨져 있다.

그 중에서 황골엿을 만들면서 엿술까지 내는 이현순 할머니를 만났다. 1928년생. 아흔은 훌쩍 넘겼지만, 아직도 가마솥을 지피면서 조청과 술을 빚는 노익장을 보여주는 이현순 할머니. 그녀가 엿술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횡성에서 결혼해, 원주 황골로 이사를 온 스물여덟살부터다. 엿을 만들어 원주 장에 내다 파는 마을로 이사를 왔으니 당연히 황골엿과 엿술을 빚게 된 것이다.

시어머니와 함께 엿과 엿술을 만들었던 이현순 할머니는 자신의 엿과 엿술이 더 좋은 맛을 냈다고 말한다. 이렇게 시작한 엿과의 인생은 63년째가 됐다. 그것도 나무 장작불을 지피는 옛부엌 방식을 고수하면서 말이다.

가스불로 바꿔서 엿을 만들기도 했지만 장작불만큼 좋은 맛을 내지 않아 결국 가스불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렇게 고된 노동의 흔적은 할머니의 얼굴과 손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런데 여전히 고된 일을 놓을 생각이 없다고 한다. 

황골의 엿은 일반적인 엿 만드는 방식과 다르다. 보통의 경우는 식혜를 먼저 만들고, 이를 고아서 조청과 엿을 만들지만, 이곳에선 식혜 만드는 과정이 생략된다. 엿기름과 물에 불린 곡물을 가마솥에 넣고 끓이는데, 고운체로 거르면서 두어 차례 끓이면 조청이 되고 이를 더 끓이면 황골의 엿이 만들어진다. 방식도 차이가 나지만 재료도 황골만의 특성이 담긴다. 쌀이 귀했던 시절이어서 자연스레 주변에서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옥수수를 넣고 있는 것이다.   

엿술은 엿기름을 두 번 나눠 넣어서 삭힌다고 한다. 여기에 누룩을 넣어 발효시킨 술은 꽤 알코올감도 느껴지면서 달큰하다. 페트병에 넣어 판매되는 엿술은 정겹기까지하다.

하지만 이런 술을 내는 집들이 점점 줄고 있다고 한다. 엿술을 전문으로 내는 양조장이 없는 가운데, 가내수공업으로 술을 만드는 집까지 줄면 결국 강원도의 향토 전통주 하나는 우리의 기억에만 남게 될 수도 있다. 단풍을 찾아 원주(치악산)로 여행을 떠날 때 황골은 들려볼만하다. 지난 100년 동안 원주를 대표하는 술 중 하나를 만나는 일만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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