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의 바랑골에서 생산되는 쌀로 세번 술을 빚어 내는 고급 수제막걸리와 약주. 대구 서씨 가양주의 비법을 담긴 금계당의 ‘바랑’(막걸리)과 ‘별바랑(약주)’ (제공=금계당)
안동의 바랑골에서 생산되는 쌀로 세번 술을 빚어 내는 고급 수제막걸리와 약주. 대구 서씨 가양주의 비법을 담긴 금계당의 ‘바랑’(막걸리)과 ‘별바랑(약주)’ (제공=금계당)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음력 정월 첫 돼지날에 술을 빚어 봄이 돼 마시는 술을 흔히 삼해주라고 한다. 돼지날을 뜻하는 해일은 가장 정결하다는 날이다. 이날 좋은 쌀을 내어 밑술을 담아 해일에 맞춰 세 번 술을 빚어 마시는 술이 서울의 대표적인 명주, 삼해주인 것이다.

이 술 말고도 돼지날을 잡아 빚는 술이 하나 더 있다. 약산춘이다. 봄춘(春)자는 우리 술 중 맑은 청주를 뜻하는 말로 호산춘, 동정춘, 벽향춘 등의 술도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두 술에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두 술 모두 서울을 대표하는 술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이 술에서 출발한 약주가 안동에서 나고 있다. 전통주 복원의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박록담 선생으로부터 삼해주 등을 배우고, 안동으로 내려와 대구 서씨 집안의 제주를 빚고 있는 서규리 금계당 대표의 이야기다.

그가 빚는 술은 생쌀을 발효시켜 빚는 술이다. 보통은 고두밥이나 죽을 내어 빨리 발효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술을 빚는데, 생쌀은 발효에 오랜 시간이 들어간다. 시간을 줄이기 위해선 발효력이 강한 누룩을 사용해야 한다. 국순당, 배상면주가, 배혜정도가 등 고 배상면 선생의 자녀들이 운영하는 양조장과 일부 술도가에서만 생쌀 발효를 한다. 물론 이들 양조장에선 배상면 선생이 개발한 역가(발효력)가 높은 발효제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금계당 서규리 대표는 일반 누룩을 이용해서 생쌀 발효를 한다. 그것도 일반적으로 알려진 누룩 배합비율에 10분의 1 정도를 넣는다고 한다. 전통주 취재를 위해 전통주 교육기관 등에서 교육까지 받았던 기자의 귀를 의심할 정도의 수치였다.

집안의 술을 빚기 위해 주말부부를 선택했을 만큼 강단있게 상업화의 길을 나선 금계당의 서규리 대표. 사진은 금계당의 발효공간에서 자신의 술을 설명하는 모습
집안의 술을 빚기 위해 주말부부를 선택했을 만큼 강단있게 상업화의 길을 나선 금계당의 서규리 대표. 사진은 금계당의 발효공간에서 자신의 술을 설명하는 모습

그러나 서 대표의 목소리는 분명했다. 쌀량의 2% 미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술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술을 빚기 위해 선뜻 주말부부를 결정하고 홀로 안동행을 선택했을 만큼 강단 있는 그의 성격은 술을 빚는 모습에도, 자신의 주방문(술 만드는 법)에 대한 자신감에도 배어있다.

안동 바랑골에서 농사를 지은 쌀과 5대째 내려오고 있는 발효기법이 합쳐져 만들어진 술, 바랑(막걸리)과 별바랑(약주)은 그가 내는 술이름이다. 바랑은 승려들이 등에 지고 다니는 자루 모양의 주머니를 뜻한다. 지역명과 술을 담는다는 주머니를 중의적으로 이름에 담은 것이다.

서 대표의 술 이야기가 흥미로운 대목은 한 가지 더 있다. 약산춘이 서울 술이 된 것은 약현(약고개)에서 빚어진 술에서 기원한다.

그런데 약현(지금의 약현동)에서 술을 빚는 사람이 바로 대구 서씨 집안이다. 서 대표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따르면, 조선 중종 때의 학자 함재 서해의 부인인 고성 이씨가 함재가 별세한 이후 아들 약봉 서성과 서울로 이사한다. 그런데 거처를 둔 곳이 약현. 이곳에서 술을 빚어 아들 뒷바라지를 하게 되는데, 그 술이 약산춘이 됐다는 것.

그리고 서 대표가 안동으로 내려오기 전까지 살았던 시흥에서 대구 서씨의 집안 술을 만나게 된다. 그렇게 운명처럼 만난 집안의 ‘해주(삼해주의 별칭)’를 바랑과 별바랑에 담은 것이다. 술맛은 생쌀 발효의 특징을 담아내듯 담백하다. 100일 숙성된 술답게 맛의 균형감도 잘 잡혀있다. 올 4월에 주류제조면허를 내고 지난 9월부터 술을 내는 금계당. 아직 업력은 짧지만, 철저히 손에만 의존하는 수제 술이라는 점에서 맛은 충분하다.

집안마다 제사를 지내고 손님을 맞기 위해 집안의 술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안동. 게다가 소주를 내려 증류주의 풍미를 즐겼던 고장인 안동에서 가양주의 품격을 지닌 고급 수제 막걸리와 약주가 상업화된 것은 반갑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리고 금계당의 도전이 안동지역 가양주의 상업화에 물꼬를 틀 것으로 예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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