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들이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아서 그런지 생각보다 이견 없이 신용정보법 개정안 통과에 대한 뜻이 모였습니다. 다음 논의 때 무리 없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신용정보법 개정안(이하 신정법)이 발의된 이후 처음으로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서 논의가 이뤄졌던 지난달 24일, 회의 직후 나온 데이터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실제 신정법 첫 논의에서 의원들은 별다른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고, 법 통과에 대해 업계에 기대감을 심어줬다.

하지만 정무위는 지난 21일 열린 법안소위에서 신정법을 의결하지 못했다. 바른미래당 지상욱 의원의 신정법 통과 절대 반대 의견에 부딪혀서다.

정부여당은 신정법 처리가 급한 과제로 꼽히는 만큼, 이른 시일 내 법안소위를 열고 신정법을 원포인트로 다시 논의했으나 반대 의사를 거듭 강조한 지 의원에 의해 신정법은 결국 처리되지 못했다.

신정법은 가명정보를 통해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도 금융 등 산업에서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을 골자로 한다. ‘마이데이터(MyData)’ 산업 도입에 바탕이 되는 법안이기 때문에 업계는 신정법이 국회를 통과해 데이터 관련 사업을 적극 영위할 수 있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업계 기대와 달리 신정법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제자리 걸음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개정안이 발의되고 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의원들이 법안을 들여다보기 시작해서다. 때문에 금융권뿐만 아니라 국내 전 업권은 1년간 희망 고문만 당하고 있다.

신정법 첫 논의 당시 가명정보 활용 부분은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당시 지 의원은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고, 시민단체도 잠잠했다. 오히려 일부 의원은 가명정보가 비식별정보라 개인정보권이 침해되지 않으니 몸 사릴 필요가 없다며 법안 처리 동의에 힘을 싣기도 했다.

또 가명정보 활용 문제는 금융위원회가 일각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이미 산업계와 시민단체 간 합의를 거친 내용이지만, 지 의원이 반대 뜻을 바꾸지 않는 이상 연내 처리될 가능성은 적다.

지 의원이 반대 입장을 고수하는 이유는 개정안의 ‘개인 동의 없는 가명정보 활용’ 항목 때문이다. 가명정보는 개인을 알아볼 수 없게 비식별 처리한 정보를 말한다. 지 의원은 아무리 비식별처리 된 정보라 해도 개인의 동의를 거쳐야 하며, 이를 기업이 사용할 때 엄격한 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업계는 신정법에 명시된 보호 장치가 충분하다고 입을 모은다. 가명정보를 부정하게 사용한 회사는 전체 매출액의 3%에 해당하는 금액을 과징금으로 부과해야 하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 수도 있어서다.

다음 달 9일 끝나는 마지막 정기국회는 데이터 3법을 살릴 마지막 기회로 꼽힌다. 이번 정기국회가 끝나면 총선 국면으로 접어든다. 20대 국회서 처리되지 않으면 데이터 3법은 내년 5월 자동폐기 수순을 밟는다.

지 의원은 마지막 골든타임일지 모를 이 시점에 어깃장을 놓고 있다. 지 의원은 27일 기자회견을 열어 “신정법은 국가가 기업들 돈벌이를 위해 국민들 개인정보를 빼내는 법안”이라며 “해당 법안은 반대여론도 높다”고 지적했다.

역설적이게도 지 의원은 지난 21일 은행 대주주 심사 기준에서 기업의 범법 전력을 제외해주는 ‘인터넷전문은행특례법 개정안’을 무성한 반대여론에도 찬성해 통과시킨 바 있다.

정기국회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국민의 인권을 운운하며 데이터산업 활성화를 막고 있는 게 내년 총선을 의식한 것이라면 이미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다.

국내 데이터 경제 활성화 정책은 해외 선진국에 비해 많이 뒤처진 상태다. 정책이 늦은 만큼 고삐를 더욱 조여야 한다. 정보 주체인 개인의 인권에만 초점을 둬 이들이 얻을 수 있는 편익과 혜택을 앗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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