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12월 크리스마스, 전쟁터에 찾아온 극적인 휴전
서로 나누는 술잔, 소통의 시작이자 평화의 메시지 담겨

1914년12월은 유럽의 젊은이들에게 지옥과 같은 시기였다.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에 집에 갈 수 있다고 믿었던 이들은 프랑스의 들판에서 서로 의미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사진은 메리크리스마스(원제 ‘조이유 노엘’)의 영화 포스터
1914년12월은 유럽의 젊은이들에게 지옥과 같은 시기였다.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에 집에 갈 수 있다고 믿었던 이들은 프랑스의 들판에서 서로 의미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사진은 메리크리스마스(원제 ‘조이유 노엘’)의 영화 포스터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1914년 8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페르디난트 대공이 암살된 지 두 달, 당시 유럽 젊은이들은 모두가 민족주의라는 이름 아래 기꺼이 전쟁에 나가고자 했다. 전쟁은 몇 주 지나지 않아 끝날 것으로 판단했으며 길어져도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엔 고향에 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대전쟁(1차 세계대전)으로 처음 이름 붙여진 이 전쟁에서 유럽은 850만 명의 군인을 전장에서 잃어야 했고, 전쟁의 끝나고 난 뒤 합스부르크가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여러 개의 약소국가로 나뉘어야 했다.

오스만 제국은 소아시아와 유럽의 한 귀퉁이인 이스탄불에 만족해야 하는 처지(터키)에 몰렸으며, 독일은 히틀러 등장 이전까지 혼돈 속에 빠지기만 했던 바이마르 공화국으로 몸짓을 축소 당했다. 여기에 로마노프 왕조는 몰락하고 러시아는 소련이 되고 말았다.

대전쟁은 인간은 물론 국가와 국제사회 질서 전반에 쉽게 아물지 못할 만큼의 상처를 남긴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전쟁사가 존 키건은 1차 세계대전을 비극적이고 불필요한 전쟁이었다고 말한다.

영화 <조이유 노엘(메리 크리스마스)>은 1914년 여름의 비이성적으로 격앙된 유럽의 분위기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 세 나라 어린이들의 애국주의적 발언으로 시작되는 영화의 도입부는 물론 스코틀랜드 청년이 전쟁 개시를 알리 위해 성당을 찾아와 동생과 같이 나가면서 성전을 밝히고 있는 촛대의 촛불이 꺼지고 만다. 영화의 본격적인 스토리텔링이 시작되면서 유럽은 암흑을 향해 치닫기 시작한 것이다.

화면은 무의미하게 죽어가는 참호전과 포격전, 그리고 무리하게 적진을 점령하기 위해 ‘돌격 앞으로’를 명령하는 일선 지휘관들의 모습으로 채워지고, 전선은 중립지대 없이 서로의 소총으로 겨눌 수 있는 유효 사거리 안에서 대치한다.

우기인 탓에 냉기 습기를 가득 머금은 유럽의 겨울, 살을 에는 추위는 병사들의 뼛속까지 파고들고 죽은 전우들의 시신은 양 진영 사이의 무인지대에 어지럽게 버려져 있는 전장의 참혹함은 지난여름 승리를 장담하며 총을 들고 나선 젊은이들을 절망케 하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대전쟁은 4개월간 한 치의 땅을 두고 수없이 많은 젊은이를 희생시켜야 했다.

그리고 맞은 크리스마스, 모든 유럽인들이 이쯤이면 끝났을 것이라고 믿었던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영화 <조이유 노엘>은 바로 1914년 크리스마스 이브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실제 사건을 토대로 재구성된 영화이기도 하다.

독일측 참호에 촛불을 밝힌 크리스마스 트리가 전선을 따라 일렬로 올라온다. 20세기의 사고로는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낭만성이지만, 1914년 대전쟁의 첫 크리스마스 이브는 그렇게 시작됐다. 독일군 진영에서 들려오는 ‘고요한 밤’이라는 이름의 성가. 노래는 피아를 구별하지 않고 전선 곳곳에 흩어졌으며, 병사들의 마음에 깃들었다. 여기에 화답하듯 스코틀랜드 병사들은 백파이프로 캐롤을 연주했고, 프랑스군까지 같이 참여하게 된다.

누가 먼저였는지는 중요치 않다. 축축한 참호를 박차고 나와 조심스럽게 무인지대로 걸어나오는 병사들. 그들의 손에는 제 나라에서 위문품으로 보내진 술들이 들여있었고, 그렇게 무인지대에서 만난 병사들은 술과 담배와 초콜릿을 교환하며 예수 탄생을 기린다. 그렇게 크리스마스 휴전은 번개처럼 다가왔다.

서로가 나눈 삼페인과 포도주, 그리고 증류주는 더는 그들만을 위한 위문품이 아니었다. 진영은 달랐지만, 같은 시공간에서 전쟁이 가져다준 극도의 공포를 느꼈던 젊은이들이 나누는 영혼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결국 이들은 같이 미사를 보내고, 죽은 병사들을 위해 간소한 장례를 치르며, 자투리 시간을 쪼개 축구 경기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쟁의 신은 낭만을 허용하지 않는 법. 그들만의 휴전은 바로 상급 지휘관들에 의해 깨지고 만다.

이 영화의 미덕은 공포 속에서도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젊은이들의 감성을 숨기지 않고 보여줬다는 점이다. 어쩌면 이마저도 19세기 말부터 불었던 희망적이며 도전적인 태도의 연장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포를 경험했던 병사들의 공감하는 모습은 이 전쟁이 불필요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굳이 포도주와 삼페인 등의 술이 소통의 매개체로, 그리고 화해의 상징으로 등장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1914년 12월 플랑드르의 청년들을 그렇게 크리스마스를 맞았을 것이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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