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복 SC제일은행장 타운홀 행사서 은행업 재규정 주문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변화된 환경에 맞는 사고·질서 필요

박종봅 SC제일은행장이 6일 본점 강당에서 열린 신년 타운홀에서 임직원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박종복 SC제일은행장이 6일 본점 강당에서 열린 신년 타운홀에서 임직원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아직 동굴 밖으로 나올 수 없었던 빙하기 말기, 당시 인류의 삶의 질은 형편없었다. 먹이를 두고 상위 포식자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했으며, 그것도 최초의 포식자가 남긴 몫을 두고 돌팔매질 정도로 쫓아낼 수 있는 들개나 하이에나 정도와 다투는 수준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주거공간은 더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비와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맨션급 동굴은 검치호나 곰 같은 강한 이빨과 발톱을 가진 포식자들이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50명 정도의 무리가 비를 피하고 추위에 떨지 않으면서, 주변에 사냥감과 따 먹을 열매나 야생 곡물이 가깝게 있는, 역세권의 아담한 아파트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은 불을 통제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이다.

나무에 불을 붙여 횃불처럼 들고 있으면 상위 포식자들도 겁을 먹을 수밖에 없는데, 무리를 지어 불을 들게 되면 동굴의 주인들도 어쩔 수 없이 집을 비워줘야 했다. 마치 불이 압류 딱지 붙이는 집달관처럼 법의 집행력을 상징했던 것이다. 어쩌면 불이 가진 힘은 법과 제도 그 이상의 힘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겠다.

최근 번역 출간된 로이 루이스의 소설 <에볼루션맨>에선 초기 인류가 화산에서 불을 얻어오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무엇이든 삶의 도구로 이용하려고 머리를 쓰는 주인공 에드워드. 그는 가족들이 맹수들의 공격에 무방비 상태에 노출돼 겨우 벼랑에 살짝 튀어나온 바위 밑에 몸을 숨기고, 웅크린 자세로 밤을 새우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게다가 오가는 맹수들이 호시탐탐 아이들을 노리는 상황.

그는 결국 며칠의 시간을 투자해서 불을 찾아 떠난다. 불이 있다면 초기 인류에게도 날카로운 이빨과 강한 발톱이 생긴다는 것을 불 앞에서 쩔쩔매는 맹수들의 모습에서 착안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에드워드는 나뭇가지로 불을 이어달리기하듯 불 사냥에 성공한다.

여기서 주목할 포인트는 인류가 불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한 점이다. 처음 불을 채취한 곳이 소설 <에볼루션맨>처럼 화산이었는지, 아니면 산불이나 마찰에서 발생한 불을 우연히 얻었든지 간에 불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또 다른 진화로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게 된다.

인류가 불을 얻은 후에 일어난 변화는 밤에도 최소한의 활동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또한 추위를 피할 수 있었고, 맹수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무기가 생겼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화식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하루의 1/3 정도의 시간을 먹는데 썼던 인류는 더 짧은 시간 동안 더 많은 영양분을 화식을 통해 얻게 된다. 이것은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먹고 소화하는데 썼던 에너지를 다른 영역으로 전환하면서 또 다른 진화의 과정을 거치게 된 것이다.

여기서 불은 사회를 구분하는 기준점 역할을 하게 된다. 불이 없었을 때와 불을 통제할 수 있게 된 때의 문화는 확연하게 다르다. 그리고 불이 있는 사회와 없는 사회의 구분도 확실해진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새로운 변화에 순응하지 않는다. 소설 <에볼루션맨>에서도 불을 반대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에드워드의 형 바냐가 그다. 초기 인류가 나무에서 내려온 것도, 불을 이용하는 것도 모두 기존의 질서에 어긋난다고 말한다. 불은 땅속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사람 손에 쥐어진 불이 오히려 해를 일으킨다고 주장한다.

시간을 1만년 뒤로 돌이켜보자. 최근 수년간 우리는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그리고 핀테크라는 단어 속에 파묻혀 살고 있다. 오늘 신문의 기사에도 이 단어들은 여지없이 등장했다.

은행은 물론 금융회사들은 경쟁적으로 더 나은 모바일 금융환경을 만들기 위해 이 기술들을 적용하고 있다. 어디 금융뿐이겠는가.

초기 인류에게 수많은 솔루션을 줬던 불처럼 이 단어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새로운 경제 질서 및 규칙을 만들어주고 있다. 불이 가져온 변화만큼 이 단어들도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주고 있으며, 지금까지 가져다준 것 이상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그래서 리더들의 주문은 마인드셋의 변화에 맞춰지고 있다.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의 ‘리셋론’이 그랬다. 그리고 지난주 박종복 SC제일은행장의 말에 ‘새로고침’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2020 신년 타운홀 행사장에서 박 행장은 “닥쳐올 도전과제를 생각하면 새로운 마음가짐을 넘어 은행업에 대한 인식 자체를 ‘새로고침(리로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난 2016년부터 박 행장의 주문은 비즈니스 마인드셋 확립 및 업무혁신, 경쟁력 강화 등에 맞춰져 있었다. 혁신과 강화 그리고 마인드셋은 모두 실용의 단어들이다. 인터넷 환경이 원하는 만큼의 속도가 나지 않을 때 우리는 브라우저에서 F5(새로고침) 버튼을 찾아 누른다. 박 행장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F5 버튼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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