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산업혁명 과정에서 낙오되지 말고 리더 되자는 것
테크 자이언트의 심각한 도전, 금융업-플랫폼 한몸 돼야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세한(歲寒)이라는 말을 우리는 추사 김정희의 그림을 통해 알고 있다. 제주도에 귀양 가서 먼 길 찾아온 제자에게 그려준 그림 ‘세한도’. 소박하기보다는 초라하다는 말이 맞을 정도의 집 한 채와 나무 네 그루가 겨울을 배경으로 그려져 있는 대표적인 문인화다.

여기에서 세한은 무슨 뜻일까? 세한은 24절기 중 가장 뒤에 있는 두 절기, 즉 소한과 대한을 말한다. 1년 중 가장 추운 시기, 즉 요즘 같은 시절을 의미한다.

물론 올해는 평년보다 겨울이 겨울답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해지만 말이다.

날이 추워 천지 만물이 시들어도 소나무와 잣나무는 늦게 시든다는 송백후조(松柏後彫). 날씨가 추워져야 그 진가를 알아볼 수 있다는 뜻에서 사용되는 사자성어다. 이 문장은 공자의 <논어>와 순자의 <순자> 등 두 곳에 나온다. 동양적 정서와 잘 맞는 문장이어서 다양한 출처를 갖는 듯하다.

논어 ‘자한편’에서 말하는 송백후조의 전 문장은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야(歲寒然後知松栢之後彫也)”다. 앞서 말했듯 추운 겨울이 돼서야 비로소 송백의 늦게 시드는 것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이처럼 사철 푸르른 송백은 공자학파에겐 특별한 손님이었던 것 같다.
<순자>에도 거의 유사한 글이 인용돼 있다.

“세불한무이지송백사불난무이지군자(歲不寒無以知松柏事不難無以知君子)” 날이 춥지 않으면 송백의 빼어난 기상을 알지 못하고, 일이 힘들고 어렵지 않으면 군자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마치 공자의 말에 대한 해설처럼 속뜻을 드러내놓고 있다.

윤종규 KB금융 회장<사진>이 2020년 신년사에서 ‘송백후조’를 강조했다. 그런데 2500년 전 공자와 순자가 말하는 수준에서의 송백후조가 아닌 듯싶다. 공자의 시대는 정태적인 느낌이다.

그래서 윤 회장의 인용구를 그 시절의 감성으로 이해하면 밋밋할 뿐이다.

오히려 21세기의 두 번째 10년을 맞으면서 윤 회장이 KB금융 임직원에게 던지고 있는 ‘송백후조’의 메시지는 사느냐 죽느냐를 말하는 햄릿의 독백과도 같다.

오픈뱅킹이 전면 시행된 가운데 강력한 네트워킹 파워와 플랫폼으로 무장한 테크 자이언트의 금융업 진출은 더는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닌 엄혹한 현실이다.

그래서 윤 회장은 이미 1000만 고객을 확보한 카카오뱅크와 곧 영업을 시작할 네이버파이낸스의 움직임을 경계를 넘어선 심각한 도전으로 진단한다.

미래 비즈니스의 핵심을 플랫폼이라고 정의하는 윤 회장은 그래서 현재의 금융업 종사자에게 자신들의 플랫폼을 자문하라고 암시하고 있다. 그동안의 금융비즈니스는 스스로 플랫폼이 되려고 하지 않고, 있는 플랫폼에 들어갈 궁리만 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금융과 플랫폼이 한 몸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죽지 않고 테크 자이언트들과 당당히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윤 회장은 금융지주 직원들과 가진 타운홀 미팅에서 KB의 경쟁자를 ‘알리바바’나 ‘구글’ 같은 테크 자이언트라고 답한 바 있다.

사실 이러한 그의 답변은 그때가 처음은 아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으로 고객들의 거래 패턴을 분석해서 개별 고객에게 맞춤형 금융 솔루션을 역제안할 수 있는 글로벌 테크 자이언트는 단순히 국내 금융업계에만 위협이 아니다. 세계 유수의 금융기업들이 제4차 산업혁명에 모든 것을 걸고 투자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다.

그래서 윤 회장은 신년사에서 위기론을 먼저 설파했다. “위기가 왔을 때 어떻게 극복하고 활동하느냐에 따라 리더가 될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팔로워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것이 바로 그것. 그래서 그는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시공간에서 능력을 제대로 갖춰 사철 푸를 수 있는 소나무와 잣나무 같은 존재가 되자고 말하는 것이다.

이 기회를 놓치면 리더가 될 수 없을뿐더러 시장에서 존재조차 찾을 수 없게 된다는 뜻과 함께 말이다. 그리고 “고객 중심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꾸는 금융’이라는 담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힘차게 나아가자”라고 말하고 있다. 즉 윤 회장의 송백후조는 동태적 프로세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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