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보처 대폭 개편…민원처리 우선
보험사기대응 기능 축소 우려에
보험금누수로 계약자 불이익 예상

<대한금융신문=박영준 기자> “요즘 원(금융감독원) 기조 아시죠? 어지간하면 지급해야죠.”

감독당국을 바라보는 보험업권의 토로다. 이는 금융감독원의 소비자보호 기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보험금을 안주는 보험사는 무조건 나쁜 회사라는 시각은 올해 조직개편에도 반영됐다. 민원처리 조직은 늘리고, 보험사기대응조직은 축소하면서 ‘민원만 넣으면 보험금 받는다’는 식의 소비자 인식만 팽배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민원처리 몰두…불법행위 대응 축소

1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올 초 금감원은 금융소비자보호를 전면에 내세운 조직개편을 단행, 금융소비자보호처를 대폭 뜯어고쳤다.

금소처는 기존 6개 부서와 26개 팀에서 13개 부서와 40개 팀으로 늘리고, 소비자 피해 예방 부문과 소비자 권익 보호 부문으로 재편했다. 소보처 산하의 보험 감독·검사 부문은 총괄경영 부문으로 옮기면서 소비자 피해예방 부문에 여러 국·실 단위가 신설된 것이 특징이다.

보험업계는 이번 소보처 조직개편이 상품판매에 대한 사전 검사감독 및 민원처리에 치중할 뿐이라며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신설 부서들은 민원인에 대한 권역별 신속대응에 치중하거나 금융상품의 약관심사나 개별 금융상품 판매와 관련된 기능 강화에 목적을 둔다. 상품을 만들고 판매하는 데까지 발생하는 모든 단계에 대해 상시 감독하겠다는 것이다.

신속민원처리센터와 민원분쟁조사실이 일례다. 민원처리센터는 은행·중소서민·금융투자·보험 등의 4개 팀을 구성, 권역별로 분할 관리한다. 조사실 또한 금융사와 민원인간의 분쟁에 대한 세부 대응에 중점을 둔다.

금융상품판매감독국과 금융상품심사국도 대표 신설 부서다. 감독국은 금융상품판매총괄 및 판매감독1팀·2팀 등 3개가 새로 생겼고, 심사국은 금융상품·은행중소서민·금융투자심사팀 등이 추가됐다.

반대로 축소된 부서들은 불법적인 행위에 대한 감독이나 대응 기능을 담당한다. 소보처 조직개편에서 기존 보험사기대응단 내 생명보험과 손해보험 권역별로 나뉘었던 보험조사팀은 1개로 통폐합됐다. 불법금융대응단 내 불법사금융대응 1팀과 2팀도 하나로 합쳤다. 

보험사기에 대한 대응 자체가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금감원의 보험사기대응단은 보험사기 조사나 유관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방지대책을 논의하는 곳으로, 보험사기 콘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팀장급 인력이 합쳐지면 인원도 줄어들 개연이 크다. 매년 보험사기 적발금액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반면 보험사기 대응능력은 더욱 축소될 수 있다.

금융 민원의 62%를 차지하는 보험 민원에 대한 분쟁조정을 담당하는 분쟁조정1국 내에도 변화가 생겼다. 생명보험1‧2팀과 손해보험 1‧2팀은 각각 한 개의 팀으로 축소됐다. 분쟁조정단계에 오기 전 사전민원을 예방하겠다는 게 목적이나, 팀 축소는 결국 '분조위 자체를 만들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이란 게 보험업권의 시각이다.

보험금 삭감‧지연은 ‘불편’

이번 소보처 개편에 뒷말이 무성한 건 보험업권을 겨냥한 검사방침도 한 몫 한다. 올해 금감원의 중점 검사사항을 살펴보면 보험금 지급거절이나 삭감, 보험금 지급 지체 등의 사안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내세웠다.

대신 불건전영업행위에 대한 상시검사를 강화하고, 민원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해 이상 징후 발생 시 현장검사에 나선다. 지난해 논란이 됐던 치매보험, 무‧저해지환급형 보험 등 불완전판매 가능성이 높은 상품 등은 올해 집중 점검 대상이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결국 보험 판매에 대해선 엄격히 검사하되, 보험금 지급에서는 최대한 입구를 열어놓으란 의미로 해석된다”라며 “요즘은 보험금 지급 관련 분쟁조정위원회가 개최되는 것마저 당국이 불편해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기는 명백한 불법행위고, 이를 통한 보험금 누수는 선의의 보험계약자들이 낸 보험료를 헛되이 낭비하는 짓”이라며 “보험권역에 민원이 많다고 주지 말아야 할 보험금까지 줘야 하는 건 아니다. 결과적으론 소비자보호를 역행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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