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목 한국FPSB 부회장 겸 서민금융연구원장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금융소비자보호 강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우리나라도 개별 금융법에 산재돼 있는 소비자보호 관련 규제를 통일적으로 규율하는 기본법성격인 금융소비자보호법안(이하 ‘금소법’)이 수차례 제출됐으나 번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임기 만료로 폐기된 바 있다.

그러던 금소법이 이달 마침내 국회본회의를 통과해 법률로 제정됐다.

애초 논의 됐던 ‘징벌적손해배상제도’나 ‘집단소송제도’가 빠진 것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점에서 법안이 통과된 것은 참으로 다행이 아닐 수 없다. 

흔히 ‘일’ 중에는 조금씩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 ‘일’이 있는 반면, 금연과 같이 단번에 극적인 변화를 줘야 성공할 수 있는 ‘일’도 있다. 금융소비자보호에 대해서도 이번 금소법 제정을 계기로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금융회사가 금융소비자의 신뢰 회복을 가장 최우선 과제로 삼고 해결해야 할 것이다.

금융위원회의 ‘금융소비자보호 국민인식조사(2019)’에 따르면 우리나라 금융소비자의 과반수인 62%가 “금융회사는 소비자 보호에 노력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내놨다.

금융회사에 대한 금융소비자들의 저조한 신뢰도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아무런 이유 없이 부정적인 응답이 나오지는 않았을 것으로 사료된다.

이번에 제정된 금소법은 금융소비자보호 규제 공백 및 규제 차익을 제거해 ‘동일 기능, 동일 규제’를 구현함으로써 보다 실효성 있게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동안 권역별로 이뤄지던 규제는 오랜 기간 해당 권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형성돼 온 것으로, 한 권역의 유효한 규제가 다른 권역에서도 반드시 유효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따라서 금소법이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개별 조항이나 규제가 각 권역에서 실질적으로 어떻게 작용할 지에 대해 금융소비자는 물론 전문가단체 등의 목소리를 다각도로 청취하고 하위법령 및 운영지침을 수립하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또한 금소법에 포함돼 있는 금융거래에 필요한 다채로운 인프라 구축의 법적 근거 마련 조항을 눈여겨봐야 한다.

특히 이 가운데 일반인도 전문적·중립적인 금융자문을 쉽게 이용하도록 신설된 ‘금융상품자문업’은 그 어떤 제도보다 금융소비자보호에 실효성이 있을 수 있다. 

이를 행동재무학(Behavioral Finance)적 관점에서 보면 금융상품에 대해 충분하고 정확한 정보가 주어지더라도 금융소비자들은 그에 상응하는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할 가능성도 있어서다. 금융소비자보호는 금융소비자의 특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 

금융소비자에게 문제가 발생하면 단순히 ‘귀찮다’, ‘불편하다’라는 차원을 훨씬 넘어서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계획된 삶의 여정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므로 정부는 금융소비자 문제에 대한 정책의 방향을 ‘사후 징벌’이 아니라 ‘사전 예방’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

금번 법안에 신설된 금융상품자문업은 이러한 방향에 가장 적합한 제도이자 수단이다. 그러므로 금융상품자문업에 국제공인재무설계사(CFP)와 같은 준비된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업을 정착시키는 게 관건일 것이다. 

국민건강보험에서 사전적 암 검진을 통해 건강을 관리하고 재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처럼 개인과 가계의 전 생애를 기반으로 한 가계재무설계는 전문가의 고유 영역임을 인정해야 한다.

필요할 때 조언을 받아 현명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사전적 금융소비자보호의 최우선 과제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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