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것은 죽어가는데 새로운 것은 아직 등장 안해
금융지주 및 은행·금융회사 등 신규 대응조직 절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위기는 낡은 것은 죽어가고 있으나 새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시기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말이다. 전통적인 이데올로기가 사회적 해법으로 작용하지 못하고 있을 때 그 권력의 공백을 채우듯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야수처럼 덤벼드는 시기. 그리고 그중에서 새로운 질서를 장악한 이데올로기가 나타나면 위기는 마무리된다.

위기는 꼭 이데올로기의 공백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인류가 누려왔던 각종 문명도 위기 속에서 흥망을 거듭하며 진화해왔다.

흔히 우리는 인류가 일군 문명에 대해 무너지지 않는 철옹성 같은 이미지로 대한다. 하지만 역사에는 순식간에 사라진 문명에 관한 이야기가 여럿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문자에 갇혀 있는 쇠락한 문명의 이야기는 오늘의 인류에게 불안감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솔직한 사학자들은 인류가 얼마나 허약한 문명의 체계 속에서 살고 있는지 숨기지 않고 고백하곤 한다.

40년에 걸쳐 집필한 방대한 저작물인 <문명이야기>에서 윌 듀란트는 “문명이란 얼마나 불안정한 것이며 문명의 큰 적(야만성과 건조작용)들이 문명을 파괴하기 위해 항상 기다리고 있는가”를 여러 유적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다른 사례는 TV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와 이를 바탕으로 엮은 책에 담겨 있다.

1982년경 국내에서 방영된 영국 BBC방송에서 제작된 ‘문명’이라는 타이틀의 예술 다큐멘터리를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13회에 걸친 다큐멘터리는 이후에 <예술과 문명>으로 엮어져 출판된다.

이 책에서 케네스 클라크는 “문명은 아주 허약하다는 걸 우리는 차차 알게 될 것”이라며 “문명의 적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여기에 내놓은 그의 답은 야만적인 외적도 아니고, 내부의 부패한 귀족이나 피압박자들도 아니다.

그의 답은 공포심이다. 전쟁에 대한 공포, 침략에 대한 공포, 그리고 질병과 기아에 대한 공포가 문명을 망가뜨린다고 말하고 있다.

질서와 자유, 문화와 평화를 아무리 섬세하게 이뤄 놓은 문명이라고 할지라도 언제든 전복될 수 있는 것을 두 사람은 분명히 하고 있다.

2020년. 우리는 그 규모와 기간을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문명사적 위기에 처해있다.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가 만든 팬데믹은 전 세계적 차원에서 아직도 한창 진행 중이다.

이 팬데믹이 만든 공포심은 각국의 시민들을 사재기 행렬에 나서게 했다. 이 흐름이 언제 안정될지 우리는 누구도 확답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문제는 감염병을 떨치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기에 발목이 잡힌 기업들의 경제활동이 꼼짝달싹도 할 수 없도록 막혀있다는 점이다. 국가와 지자체에서 준비하고 있는 재해재난기본소득은 가계지출에 도움은 되겠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 정도에 그칠 것이다.

기업들도 기초체력(사내유보금)이 튼튼한 곳들은 마이너스 성장의 경제위축기를 버텨낼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이 기간을 통해 시장장악력을 더욱 강화할 방법을 한창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렇게 혼돈 속에 사로잡혀 있는 환경에서 은행과 금융회사들은 어떻게 ‘포스트 펜데믹’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의 최근 기사 중에 코로나에 의해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이 급변했다고 지적하면서 각자도생을 하면서 적자생존을 하게 될 시장의 환경을 정리한 기사를 내보낸 바 있다.

이 기사에선 체력을 갖춘 기업들은 적자생존을 할 것이고, 그리고 그 기업들을 중심으로 시장에 초강력 구조조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한다. 예측이지만 예측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헨리 키신저의 이야기처럼 ‘코로나 대유행’이 세계 질서를 영원히 바꿀지도 모른다.

어제까지의 경험과 지식이 필요 없는, 새로운 기준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이 순간, 우리는 새로운 파티에 나서기 위해 입을 변변한 옷도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새로운 공간을 맞을 준비는 냉정하게 이뤄져야 한다. 금융지주회사는 물론 은행과 각 금융회사들은 자신들의 포스트를 대비한 새로운 조직의 신설을 서둘려야 한다.

그리고 감독기관은 경제 환경 전반의 큰 그림으로 그려 금융권의 대응책을 만들 수 있는 포스트를 계획해야 한다. 특히 정부는 민·관·정이 함께하는 포스트 코로나 특위를 구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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