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박요한 수석연구원

지난 2018년 무더운 여름, 날씨보다 더 뜨거웠던 이슈는 단연 BMW 차량 화재 사고였다.

제작사와 정부가 사고 원인과 책임, 조치 방안 등을 두고 갈팡질팡하는 사이 50여대의 차량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결국 20여만대의 리콜 조치와 112억원의 과징금 부과, 관련자의 검찰 고발까지 이뤄졌다.

우리나라의 자동차 리콜 규모는 매년 급증하고 있다. 지난 3년(2017~2019년) 동안 연평균 200만대 이상이 리콜돼 연간 신차 판매 대수를 넘어섰다. 이런 현상이 몇 년 더 지속하면 앞으로 판매되는 모든 자동차에서 안전에 지장을 주는 결함이 최소한 하나 이상씩 발견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보다 수십년 앞서 리콜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이미 10여년 전부터 자동차 판매 대수보다 리콜된 차량의 수가 더 많았다.

특히 지난 2014년부터 2016년에는 리콜 규모가 신차 판매량의 3배 수준을 기록했는데 단순 비교를 하면 차량 1대당 차량 결함이 3건이 발견돼 리콜됐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미국 컨설팅 업체인 맥킨지는 자동차 업계의 수십년간 품질 개선 노력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밝혔다.

특히 자동차의 전자 장치와 그 기능의 복잡성이 가히 폭발적이라고 불릴 정도로 증가하면서 전자제어 관련 소프트웨어나 부품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요한 것은 리콜 대수가 급증하는 만큼 리콜 원인에 의한 차량 고장이나 사고 역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자동차 결함이 의심되는 고장이나 사고가 발생하게 되면 자동차 제작사는 대부분 운전자의 운행 및 관리 소홀이라는 이유로 그 책임을 떠넘기기 급급했다.

이 때문에 명백히 차량 결함으로 인한 차량 화재나 시동꺼짐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결함이 발생한 부품과 이유를 운전자가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 대부분이었다. 이 과정에서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한 운전자들은 마치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은 심정을 경험하게 된다.

심지어 자동차 회사와 소비자(운전자) 간 차량 결함 분쟁을 해결하려고 도입한 사고기록장치(EDR) 역시 자동차 회사가 분석해서 운전자에게 제공하도록 하고 있어 과연 공정하고 객관적인 차량 결함 조사가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스러운 상황이기도 하다.

이러한 정황들과 경험을 통해 상당수의 소비자는 자동차 회사가 결함 사실을 인지하더라도 외부에 알리거나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꺼리면서 일부 강하게 항의하는 고객에게만 선심 쓰듯 무상으로 수리를 하고 있다는 합리적 오해와 추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자동차 제작 결함 관련 은폐, 축소, 늑장 대응 방지와 객관적 결함 원인 규명 등을 위해 관련 제도 개선 법안이 국회에서 의결됐다.

이를 통해 정부는 결함으로 인한 사고 발생이 반복되는 경우 운행 제한 및 판매 중지 명령은 물론, 제작사의 결함 자료 거짓 제출 및 기한 내 미제출 시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또 자동차 결함 피해 소비자는 리콜 이전에 수리한 비용 또는 결함 사고로 인한 신체, 재산상의 손해액을 최대 5배 범위에서 자동차 제작사에 청구할 수 있게 됐다. 이를 위한 손해배상 청구의 소를 제기한 자는 결함 조사 정보를 제공해 줄 것을 관련 기관에 요청할 수 있게 돼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가능해졌다.

올해는 자동차 결함에 대해 정부의 조사 권한이 강화되고 소비자의 피해 보상 방안이 확대되면서 우리나라 자동차 리콜 제도의 커다란 변화가 시작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결실을 얻기 위해서는 첫째, 정부는 개정된 자동차 리콜 제도에 맞춰 관련 하위 법규를 이른 시일 내에 정비해야 하고 국내 자동차 리콜 규모가 늘어난 만큼 이를 조사하고 연구하는 전문적인 인력과 조직 보강 또한 신속하게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개별 결함 사고 조사를 위해 소방청, 경찰청 등과의 업무 공조 프로세스 구축도 필요하다.

둘째, 자동차 제작사는 결함 없는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비용 절감보다 품질 향상에 노력해야 한다. 만약 설계 및 안전상의 결함이 의심되면 즉시 원인을 밝히고 결함 유무를 소비자에게 알려 구매자의 신뢰를 회복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만약 결함 사실을 은폐, 축소하거나 미온적 대응을 하게 되면 회사 이미지에 큰 타격을 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며 한 국가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고객으로부터 외면받을 수 있다는 과거 사례를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차량 결함을 바로 잡는 것은 매일 자동차를 운전하는 소비자들의 관심에서 시작된다. 10년 전 미국에서 발생한 도요타 자동차 급발진 관련 리콜은 그 시작이 911센터에 위급한 상황을 신고한 경찰관의 전화로 촉발돼 결국 전 세계에서 1000만대의 도요타 자동차가 급발진 가능성으로 리콜됐다.

차량 결함은 자동차를 운전하는 운전자가 가장 먼저 인지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운전자는 차량 결함이 의심되는 고장이나 사고에 대해 적극적으로 관련 기관에 신고 등록을 당부하고 싶다.

이에 더해 제작사에 사고기록장치(EDR) 및 고장 진단기 정보 등을 요청해 ‘본인의 과실 없음’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확보한다면 향후 발생하는 리콜 조치에서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자율차 시대가 성큼 우리 앞에 다가오는 시점에서 안전한 자동차와 신속한 결함 대처가 정착된 성숙한 사회가 하루빨리 정착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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