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된 실수서 알코올 발효의 신묘한 힘 발견
쌀 문화권 최초 술은 포도·꿀·쌀 등 함께 발효

우리술은 쌀과 누룩 그리고 물로 빚는 술이다. 누룩이 나오기전까진 사람이 곡물을 씹어 침에 있는 효소로 당화시켜 발효하는 양조법을 사용했지만 무척 고단한 방법이다. 결국 쌀문화권에선 누룩이 나온 이후 대량양조가 가능해진다. 사진은 괴산의 목도양조장의 다 익은 술항아리
맥주의 양조나 쌀문화권의 누룩은 인류의 우연한 실수로 발견한 것들이다. 빗물에 젖은 밀을 말리다 발견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누룩은 인류에게 알코올음료의 신묘한 기운을 가져다 줬다. 사진은 상주 은척양조장의 누룩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날 것의 자연에서 요리된 익힌 것으로의 이행은 인류 문명의 시작을 알리는 여명과 같다. 불을 다루게 된 인류는 자연에서 얻은 음식을 구워 먹거나 익혀 먹으면서 야만의 상황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굽기와 삶기에 천착해 진화론적으로 요리를 관찰한 레비스트로스는 <날 것과 익힌 것>에서 “요리는 자연에서 문명으로의 전환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요리를 통해, 또 요리에 의해 인간의 상태가 요리의 모든 속성과 함께 정의될 수 있다”고 썼다. 한마디로 불과 발효, 그리고 토기가 초기 인류를 인간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불을 다루게 된 인류는 발효에도 눈을 뜨게 된다. 다 익은 과일이나 빗물이 스며든 벌집 안의 꿀이 자연 발효돼 만들어진 알코올음료를 운 좋게 발견한 인류는 그  신묘한 힘에 끌리게 됐고, 결국 자연을 모방하면서 발효의 길을 나서게 된다.

물론 최초의 발효는 술이 아니었다. 발효보다는 숙성에 가까웠던 인류의 모방행위는 불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을 때 사용한 방법이다. 사냥에 성공해 먹다 남은 고기를 땅을 파서 묻어둔 것. 이렇게 먹을 경우, 더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체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이런 식으로 발효에 한발씩 다가서던 인류는 알코올음료의 놀라운 기운과 힘을 지속해서 얻고 싶어 했다. 결국, 인류는 정착을 선택하고 수렵 대신 농경에 나선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 과일이나 꿀을 술로 변환하는 것은 자연을 모방하면 해결될 수 있었다. 하지만 곡물은 쉽게 술로 바뀌지 않았다.

아직 알코올음료로 변화시키는 힘을 발견하기 전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인류는 우연한 실수에서 발견된 변화의 힘을 알아내고서야 정착을 선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실수가 인류를 놀라운 음료의 힘으로 이끌게 했을까. 수확해서 보관 중인 보리나 밀 창고에 폭우가 쏟아져 다 젖은 경우, 사람들은 이를 아까워하며 햇볕에 말렸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싹이 트던 보리와 밀은 발아가 중지된다.

아까워하며 먹었던 이 곡물에서 사람들은 단맛을 느꼈고, 자연에서 비로소 당화의 방법을 깨우치게 된다. 그리고 이를 죽으로 만들어 먹었다가, 남아 있던 죽에 자연에 있는 야생효모가 개입하면서 걸쭉한 맥주를 얻게 된다. 연속되는 실수 속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음식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오늘도 즐기는 맥주의 원형이다.

맥주의 양조나 쌀문화권의 누룩은 인류의 우연한 실수로 발견한 것들이다. 빗물에 젖은 밀을 말리다 발견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누룩은 인류에게 알코올음료의 신묘한 기운을 가져다 줬다. 사진은 상주 은척양조장의 누룩
우리술은 쌀과 누룩 그리고 물로 빚는 술이다. 누룩이 나오기전까진 사람이 곡물을 씹어 침에 있는 효소로 당화시켜 발효하는 양조법을 사용했지만 무척 고단한 방법이다. 결국 쌀문화권에선 누룩이 나온 이후 대량양조가 가능해진다. 사진은 괴산의 목도양조장의 다 익은 술항아리

그렇다면 우리 술의 원형은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만들어졌을까. 자연 발효가 가능한 포도주 등의 과일주와 미드(벌꿀주)와 달리 곡물을 이용한 알코올음료는 앞서 소개한 보리와 밀처럼 어렵고 고단한 방법을 알아야 가능하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 문화권도 상황은 비슷하다. 효모가 탄수화물을 직접 분해할 수 없으므로 인간의 실수가 개입해야 양조가 가능해진다.

현재까지 발견된 술 유적지 중 가장 오래된 곳 중 하나가 중국 허난성에 있는 자후 신석기 유적이다. 기원전 7000년 정도 되는 이 유적지에서 발견된 도기 파편에는 알코올음료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여러 수수께끼가 담겨있다.

파편에 묻은 화학물질을 분석한 결과, 포도나 산사나무 열매에서 나오는 타르타르산, 꿀의 흔적을 담고 있는 밀랍혼합물, 그리고 쌀 등의 곡물에서 나오는 식물성 스테롤 등이 나왔다. 즉 당시 사람들은 포도나 산사열매, 그리고 꿀과 쌀 등 다양한 재료를 넣어 술을 양조했던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쌀문화권의 술은 이후 누룩이 만들어지면서 본격 곡물 양조가 시작된다. 물론 누룩이 등장하기 이전에도 인간이 기획한 발효는 이뤄졌다. 탄수화물을 효모가 분해할 수 있도록 사람이 곡물을 씹어서 당화시키는 방법이었다.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태평양의 도서 지역, 카리브해 등 다양한 지역에서 술을 양조하던 방법이다. 이 같은 방법으로 빚은 술을 한자문화권에선 ‘미인주’라고 칭하기도 했다.

곡물을 이용한 대량양조는 누룩이 있어야 가능하다. 동양 문헌에서 누룩을 처음 거론한 책은 <서경>이다. 춘추전국 시대의 책에서도 자주 술은 등장한다. 그리고 누룩의 신묘한 힘은 한반도에도 전해져 다양한 술로 이어진다.

당나라의 시인 이상은은 “한 잔 신라주의 기운이 새벽바람에 쉽게 사라지는 것이 두렵구나”라고 말한 바 있고 고려 때 송나라의 사신으로 개경에 온 서긍은 <고려도경>에서 고려의 술풍속을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누룩으로 빚어온 술이 오늘까지도 우리를 즐겁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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