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반대 무릅쓰고 무형문화재 이수자 된 박준미 대표
지난해 드라이한 술맛의 약주와 약향 그윽한 소주 출시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4호로 지정된 신선주는 함양박씨의 가양주로 400년 가량 내려온 술이다.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수자가 돼 지난해부터 술을 생산하고 있는 박준미 대표(우측)는 현재 막걸리와 약주 소주 등 세 종류의 술을 생산하고 있다.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4호로 지정된 신선주는 함양박씨의 가양주로 400년 가량 내려온 술이다.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수자가 돼 지난해부터 술을 생산하고 있는 박준미 대표(우측)는 현재 막걸리와 약주 소주 등 세 종류의 술을 생산하고 있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이 희망한 길을 나서는 사람들에겐 자기의 꿈을 완성해야 한다는 강한 ‘성공 서사’가 자리한다.

신념과 의지 그리고 가족으로부터의 당부 등이 합쳐진 이 서사는 그 사람이 원하는 길을 걷는 동안 발길을 비춰주는 등불이 돼줄 뿐 아니라, 걷는 길에서 마주칠 간난신고를 이겨내는 힘이 돼주곤 한다.

날씨 좋았던 5월 하순,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4호로 등재된 ‘신선주’를 취재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하얀색으로 단아하게 차려입은 2층의 양조장 건물은 교회를 리모델링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가족과 형제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잘 나가던 건축디자이너 일을 접고 무형문화재 이수자가 돼 양조업에 뛰어든 박준미 대표(농업회사법인 신선)를 만났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기자의 머릿속은 앞서 말한 서사가 떠나지 않았다.

지난해 돌아가신 아버지 박남희 씨로부터 술을 배워 이수자의 길에 들어선 박준미 대표의 술에 대한 지향은 명확했다. ‘아버지의 못 이룬 뜻’의 완성이었다.

박남희 씨가 신선주로 무형문화재가 된 것은 1994년의 일. 함양 박씨의 가양주였던 이 술은 18대가 이어져 내려왔던 술이란다. 청주의 금단산의 봉우리 중 하나가 신선봉이었는데, 이 봉우리의 이름을 따 신선주가 됐다고 한다.

특히 이 술이 지닌 약효는 박남희 씨의 조부(박재순)의 기록물인 《현암시문합집》에 기록이 돼있어, 무형문화재 등재에 부족함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무형문화재 등록 1년 뒤에 양조장이 부도가 난다. 양조장은 물론 전답까지 모두 경매로 넘어갔다. 한마디로 풍비박산이 난 것이다. 그런 까닭에 박 대표의 형제(2남 7녀)에게 술이라는 존재는 그저 집안 몰락의 근본 원인일 뿐 계승해야 할 문화도, 전통의 대상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렇게 가족 모두를 힘들게 했던 술에 박 대표가 끌리게 된다. 부도가 난 뒤에도 신선주를 놓지 못했던 아버지. 그리고 병을 얻어 투병 중일 때도 신선주에 대한 자랑은 그친 적이 없었던 아버지의 눈으로 술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박 대표는 지난 10년을 신선주 복원에 매진하게 된다. 그런데 이 일을 형제들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모두가 나쁜 기억만을 가진 술을 복원한다고 하면 그에 대한 따가운 질타만 그녀를 기다릴 게 뻔했기 때문이다. 누룩연구소를 만들고 한옥을 사들여 신선주연구소도 만든다.

1994년 무형문화재로 지정됐지만 이듬해 양조장이 부도나면서 갖은 고생을 다했던 충북의 대표 무형문화재 신선주가 이태 전부터 청주시의 도움을 받아 본격 상업양조에 나서고 있다. 사진은 교회건물을 리모델링한 양조장 건물
1994년 무형문화재로 지정됐지만 이듬해 양조장이 부도나면서 갖은 고생을 다했던 충북의 대표 무형문화재 신선주가 이태 전부터 상업 양조에 나서고 있다. 사진은 박준미 대표가 사재를 털어 마련한 양조장 건물전경

여기에 음식까지 보태면서 동아시아 음식문화 교류 행사 등에도 참여하게 된다. 당연하게도 이런 일은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 십상이었다. 형제들의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술에 천착한다. 아버지로부터 배운 술 이외에 다양한 우리 술의 모습을 보기 위해 전통주연구소 등도 찾아 나섰다.

그렇게 시작한 양조의 길은 결국 이태 전 평생 모은 돈으로 현재의 양조장 건물을 매입하면서 본궤도에 들어서게 된다. 신선주를 아끼는 보존회 회원들의 관심 속에서 신선주가 서서히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신선주가 다시 일반에 첫 선을 보인 것은 지난해의 일이다. 막걸리와 약주와 소주(알코올 도수 42도) 등 세 종류가 출시돼 충북 무형문화재 술들이 모두 상업양조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원래의 신선주는 단양주였으나 박 대표의 손을 거치면서 100일 발효숙성되는 삼양주로 재탄생하게 된다. 집안에서는 식전주로 한 잔 정도 마시는, 말 그대로 약주였다.

그리고 들어가는 재료를 보면 신선주라는 이름에 부족함이 없다. 생지황, 인삼, 당귀 등 10종의 약재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청원생명쌀로 밑술을 담고, 찹쌀로 덧술하는 방식으로 삼양을 거치면 약재향이 은근하게 술에 담긴 신선주가 나온다.

약간의 산미와 감미가 느껴지지만, 술은 대체로 담백하고 드라이하다. 파인다이닝 식사와 잘 어우러질 조합이다. 약재향도 술향을 이기지 않을 정도여서 목넘김도 부담이 없다. 증류기로 내린 소주는 오히려 쌀소주의 밋밋함을 약재향이 보충해준다.

지난 10년 신선주 복원에 매진했던 박 대표는 앞으로의 10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원형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하면 젊은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는 술을 만들어내느냐에 더 많은 방점을 찍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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