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귀촌 농부들 손에서 익어가는 우리술 최근 급증
희양산, 진맥소주, 얼음골사과, 황금주 등 잇달아 출시

경북 문경에서 오리농법으로 벼농사를 짓는 농부 김두수씨는 희양산공동체가 생산하고 있는 유기농 쌀 소비를 위해 막걸리를 양조하고 있으며, 경북 안동에서 밀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 박성호씨는 맹개마을에서 밀농사를 크게 지으며 진맥소주를 내리고 있다. 사진은 두술도가의 희양산막걸리와 맹개술도가의 진맥소주
경북 문경에서 오리농법으로 벼농사를 짓는 농부 김두수씨는 희양산공동체가 생산하고 있는 유기농 쌀 소비를 위해 막걸리를 양조하고 있으며, 경북 안동에서 밀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 박성호씨는 맹개마을에서 밀농사를 크게 지으며 진맥소주를 내리고 있다. 사진은 두술도가의 희양산막걸리와 맹개술도가의 진맥소주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술은 본질적으로 타자와의 교감을 통한 사회화의 도구다. 따라서 술을 빚는 행위는 그 사회화의 도구를 생산하는,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된 노동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의 양조는 사회화의 도구를 생산한다는 의미에 앞서 상업적 목적의 달성에 강하게 방점이 찍혀있다. 그러나 상업양조를 한다고 해서 모두가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는 것은 아니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 중 하나인 페이스북을 보다 눈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친구의 글 하나를 읽었다. 밀양 얼음골에서 사과 과수원을 하는 농부 조용윤씨의 글이다.

사과 농사를 하면서 농산물 가공산업을 시작했고 그러다보니 일손이 부족해 직원을 고용했으며, 월급을 주려니 1년 내내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는 조용윤씨.

그래서 그는 술을 빚기로 하고 지난해 발효조와 증류기 등 새로운 기계 설비를 들이고, 주류제조 면허를 얻었다고 한다. 그 덕에 농부 조용윤씨는 애플사이다와 맥주, 그리고 증류주를 생산하는 술도가의 대표를 겸하게 됐다.

이처럼 출발이 농업이다보니 조 대표는 자신의 술빚는 행위를 ‘상업양조라기보다 농업양조’라고 표현한다.

문경에서 오리 농법으로 벼농사를 짓고 있는 귀촌 19년차의 농부 김두수씨는 요즘 고양이 일손까지 빌려야 할 정도로 바쁘기만 하다.

벼농사의 일손도 그렇지만, 복숭아 과수원에서 그를 자주 부르기 때문이다. 봄에 냉해를 입어 낙과가 많아 수확이 얼마나 이뤄질지 모르지만, 남은 복숭아라도 제대로 농사짓기 위해 일일이 종이봉투를 씌워줘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김두수씨는 쌀 소비가 줄면서 판매도 따라 줄고 있는 희양산 공동체가 생산한 쌀을 효과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아이템을 찾다가 지난해부터 막걸리를 빚고 있다. 양조를 따로 배운 적도 없지만, 독학으로 맛좋은 막걸리를 생산하면서 바쁜 일손이 더 바빠졌다고 한다.

동화작가 전미화씨의 도움으로 예쁜 그림을 라벨로 사용하는 ‘희양산막걸리’와 ‘오!미자씨’가 그의 농업양조의 작품인 셈이다. 

누렇게 익은 안동 맹개마을의 밀밭. 그 한가운데에 수확을 앞두고 농부 박성호씨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수확한 밀은 발효시킨 뒤 증류를 하게 된다. 이 술이 안동의 선비 김유가 쓴 '수운잡방'에 나오는 ‘진맥소주’다.
누렇게 익은 안동 맹개마을의 밀밭. 그 한가운데에 수확을 앞두고 농부 박성호씨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수확한 밀은 발효시킨 뒤 증류를 하게 된다. 이 술이 안동의 선비 김유가 쓴 '수운잡방'에 나오는 ‘진맥소주’다.

누렇게 익은 밀밭에서 사진 삼매경에 빠진 남자가 한 명 있다. 이제는 수확을 앞둔 안동 맹개마을 밀밭 한가운데서 말이다. 귀촌 13년 차 농부 박성호씨가 피땀으로 일군 밀밭이다.

그런데 박성호씨가 처음부터 밀 농사를 지은 건 아니다. 벼를 포함해 다양한 곡물을 농사짓다가 몇년 전부터 밀과 메밀로 특화시켰다고 한다.

박성호씨도 밀 농사를 짓게 되면서 밀의 안정적 소비를 위해 안동소주를 아이템으로 잡은 셈이다. 조옥화, 박재서 등의 쟁쟁한 명인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생산하고 있는 안동소주에 자신의 소주 하나를 더 들이민 것이다. 

하지만 농부 박성호씨는 다른 안동소주와 차별화시키기 위해 안동 출신의 선비 김유가 쓴 <수운잡방>에 나온 주방문에 따라 쌀소주가 아닌 밀소주를 내리고 있다.

즉 문헌에 따른 안동소주의 원형을 적절하게 자신의 아이템으로 만든 셈이다. 그리고 그의 소주도 박성호씨의 농업양조가 일궈낸 작품이기도 하다. 

서산에서 큰마을이라는 식당을 하면서 농사를 짓고 있는 김병식씨도 농업양조의 꿈을 키우고 있는 농부다. 좋은 술을 빚기 위해 전문 양조교육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남들은 삼양도 힘들다고 하는데 그는 거침없이 칠양주를 내리고 있다. 

부드러우면서도 단맛이 도드라지는 백제술의 명맥을 잇는 술을 빚고 있는 김병식씨의 최근 고민은 적절한 단맛을 찾는 것. 이에 따라 그는 쌀의 품종을 바꿔가며 다양한 실험양조를 하고 있다.

또 쌀 소비 촉진 방안으로 시에서 실시하고 있는 쌀맥주 양조교육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자신이 빚은 술의 이름을 ‘황금주’로 정하고 라벨 디자인까지 마쳤다고 한다.

즉 농부 김병식씨도 상업적 성공을 기대하면서 양조를 하고 있지만 출발은 농업에 기반을 둔 농업양조인인 셈이다. 

이 지면에서 소개하지 못한 많은 농업양조인들이 있다. 대기업에서 생산하는 술들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지만, 최근 크래프트 문화가 형성되면서 소규모 주류제조면허로 빚는 술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도 늘고 있다.

심지어 재료부터 스스로 생산해서 술을 만드는 농업인들이 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좋은 먹거리를 생산해야 한다는 ‘건강한 생산자 운동’의 일환일 수도 있다.

술은 빚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다. 그런데 직접 농사지은 곡물로 빚은 술은 말을 더해 무엇할까. 가장 맛있는 술은 술이 익어가는 양조장 앞에서 마시는 술이다.

농부의 마음이 깃든 우리 술이 더 많이 알려지기를 바랄 뿐이다. 오늘도 새롭게 주류제조면허를 낸 농부의 손에서 익어갈 술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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