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옥동 신한은행장 하반기 전략회의서 ‘과정 중요시하겠다’ 밝혀
정의 중시하는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메시지, 선한 영향력 기대

진옥동 신한은행장이 17일 경기도 용인 연수원에서 ‘2020 하반기 경영전략회의’를 열고 과정의 정당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 신한은행)
진옥동 신한은행장이 17일 경기도 용인 연수원에서 ‘2020 하반기 경영전략회의’를 열고 과정의 정당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 신한은행)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금융업은 전통적으로 실용과 실리의 사업영역이었다. 중세의 금욕적 사회관에선 금리라는 존재를 쉽게 인정하지 않았지만, 상업 질서에서 이자는 자본의 회임 기간에 대한 보수로써 정당화됐고 결국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제 설 자리를 잡고 지금까지 맹위를 떨치는 산업으로 발전해 왔다.

‘적은 비용으로 가장 많은 이윤을 창출’한다는 경제학의 기본 전제에도 부합하는 금융의 운동 질서는 금융산업을 자본주의의 꽃으로 성장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물론 영국의 사학자 니얼 퍼거슨은 《금융의 지배》에서 “금융사는 안데스 산맥처럼 들쭉날쭉 불규칙한 봉우리와 골짜기의 연속이었지, 매끄럽게 위로 뻗은 경로가 아니었다”고 고백했지만 말이다.

심지어 퍼거슨은 진화론적 입장에서 금융업이 멸종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내놓았지만, 여전히 금융업은 자본주의의 버팀목이 돼 주고 있다.

10여 년 전, 이 땅에 ‘정의론’ 열풍이 분 적이 있다. 당대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한 시민들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열광하면서 자신의 주변에서 ‘정의’를 구현하는 방법을 찾는데 아낌없이 시간과 돈을 투자했다.

샌델의 책은 국내에서만 지난 10년 동안 200만 권 이상이 판매됐고, 베스트셀러에 오른 뒤 방한해서 가진 그의 강연에는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강연을 듣지 못한 시민들은 EBS 채널을 통해 공중파로 방송된 그의 하버드대 ‘정의론’ 강연에 만족해야 했다. 이처럼 ‘정의’는 당대의 핵심의제로 떠 올랐다.

이러한 열풍은 우리 사회의 격변기마다 목소리를 숨기지 않고 자기 뜻을 표출했던 시민들의 용기가 돼 주었고, 선거 때마다 핵심의제가 빛바래지 않고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시민들은 ‘정의’의 관점에서 표를 선택해 왔다.

이 같이 우리 사회는 ‘정의’를 중요한 아젠더로 존중해 왔지만, 기업에서는 ‘정의’를 큰 목소리로 낼 수 없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사회적 목표는 확실하게 개선되고 발전해왔지만, 미시적 영역인 기업에선 여전히 권위주의적 질서가 남아있는 이중적 모습 때문일 것이다.

특히 기업에선 여전히 실용주의적 잣대가 중요한 판단의 근거가 되는 ‘공리주의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겨왔다.

이처럼 다수의 행복을 강조하는 사회는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했으며, 과정에 충실할수록 손해 보기 일쑤인 기형적인 사회로 성장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실리를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는 금융업에서 ‘과정’을 중시하자는 메시지가 나와 신선한 화제가 되고 있다.

최근 유튜브 방송을 통한 강연으로 리더십과 경영전략 등을 밝혀온 신한은행의 진옥동 행장이 그 주인공이다.

진 행장은 지난주 1150여명의 임직원이 모인 가운데 ‘2020 하반기 경영전략회의’을 가졌는데 경영전략 발표 중 일부의 메시지를 과감하게 ‘과정’에 할애했다. 진 행장의 메시지 중 관련 글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과정의 정당성은 정의와 신의성실로 구성돼 있으며, 직원들이 정당한 영업과 전략을 추진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고 과거와 같이 실적의 순위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성과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중요시하겠다.”

이런 문화가 정착되면 “정당성은 결국 성과의 질을 높이고 고객과 함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진 행장은 낙관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진정한 성과와 정당성을 제도에 어떻게 반영하는가 중요하다”며 “KPI의 변화뿐만 아니라 성과의 정당성을 검증하기 위해 이행과정 평가를 도입했고, 이를 통해 새로운 영업문화를 만들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진 행장의 이같은 메시지는 ‘정의’를 중요시하는 최근의 시대정신이 제대로 반영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강연은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산업 전반에 과정을 중시하는 문화가 확산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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