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레이하운드’ 크라우스 함장처럼 자신보다 공동체 중시
1만년전 인류가 남긴 동굴 벽화도 생존위해 간절함 깃든 그림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리더의 선택은 매번 고독하게 이뤄진다.

의사결정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은 온전히 자신의 몫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리더의 행동에는 간절함이 깃들기 마련이다.

제2차대전이 한창 진행 중인 1942년. 아직 미국은 참전을 결정하진 않았지만, 연합군에게 무기와 각종 군수품 및 생필품을 전달하기 위해 대규모 선단을 구성해 대서양을 건너보냈다.

대서양의 중앙부는 ‘블랫핏’이라 불리는 암흑지대. 독일군은 이 바다에서 영국으로 들어가는 상선을 저격해 영국의 보급로를 차단하려 했다.

1939년 9월부터 1943년 5월까지 이 바다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독일군의 U-보트(잠수함) 830척은 연합국의 상선 2452척(1300만 톤)과 군함 175척을 침몰시켰다.

수치로 보여주는 연합국의 피해는 컸으며, 호송선단을 책임지는 연합국의 함정들은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블랫핏 지역을 통과해야 했다.

이 시절의 이야기가 최근 애플TV로 개봉한 영화 〈그레이하운드〉(아론 슈나이더 감독)에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대규모 선단을 독일의 U-보트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구축함이 동행하게 되는데, 어니스트 크라우스 중령(톰 행크스 분)은 처음으로 함장을 맡아 호송 작전을 지휘한다.

항공기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대서양 중앙부. 이곳에는 독일군의 U-보트가 이리떼처럼 상선과 군함을 잡기 위해 밤마다 출몰하는 상황.

적의 공격을 피해가며 잠수함 사냥을 해야 하는 크라우스 함장은 촌각을 다투듯 군사적 의사결정을 내려야 했고, 그의 결정을 기다리는 장병들의 의구심을 실력으로 증명해내야 했다.

U-보트 사냥에 성공할 때마다 그의 첫 호송 작전에 대한 부하들의 불안감은 해소됐지만 고독하게 의사결정을 내려야 했던 크라우스 함장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고 식사도 거르기 일쑤였다.

작전에 성공해야 한다는 크라우스 함장의 간절함이 자신보다 선단 전체를 위한 행동으로 연결된 것이다.

영화는 그레이하운드호보단 크라우스 함장에 초점을 맞춰 리더의 고뇌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주연을 맡은 톰 행크스가 제작과 각본에 참여한 탓에 주인공이 고뇌하거나 리더십을 발휘하는 순간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리더의 무거운 책임감에서 비롯된 리더십과 조직원과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 등을 제대로 스크린에 담은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간절’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한 상황’이다.

간절할 ‘간(懇)’의 한자 구성은 豸(해태 치)+艮(그칠 간)+心(마음 심)이다.

마음 심 위에 놓인 해태 치자는 먹잇감을 발견한 육식동물이 자신의 몸을 잔뜩 웅크리고 사냥에 나서기 직전의 그 긴박한 상황을 표현한 글자다.

그 옆에 놓여있는 그칠 간은 눈여겨보기 위해 정지한 상황에서 사물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을 담아낸 글자다.

즉 목표물을 앞에 두고 반드시 사냥에 성공하려는 포수(혹은 포식자)의 심정을 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천한 사람이 자신을 낮춰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한 마음이란 해석도 존재하지만 말이다.

이러한 간절함은 빙하기가 끝나가던 1만 년 전의 인류에게도 있었다.

인류보다 더 강한 포식자들이 존재하는 상황, 생존을 위한 몸짓과 결정은 매 순간을 긴박하게 옥죄였을 것이고 그래서 무언가에 대해 더욱 간절했을 것이다.

피레네산맥에 산재해 있는 동굴이나 유라시아 초원 지역의 바위에는 각종 벽화와 암각화가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의 목적이 사냥 성공에 대한 기원이든, 성인식 등의 통과의례였든, 오늘날의 회화처럼 원시시대의 예술 활동이었든 벽화와 암각화에는 생존을 위한 간절함이 손길 하나하나에 담겨 있다.

동굴 벽에 그려진 그림은 그림의 대상과 소통하려는 1만년전의 인류의 간절한 기도였으며, 벽에 남겨진 손바닥 자국은 바위에 갇혀 있는 대상에 대한 봉인 해제 절차라고 한다.

그 시절 종교적 함의를 담고 행해졌던 행위는 앞서 소개한 영화 〈그레이하운드〉의 크라우스 함장의 행동과 같은 선상에 놓여있다.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공동체의 안녕과 번영. 이를 위한 간절함은 행동에 묻어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고귀한 가치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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