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관리하면서 공동체의 핵심의례 ‘식사’ 가능해져
코로나19로 송년모임도 막아야하는 야박한 시절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인류는 불을 통제하기 시작하면서 사회화의 길을 걷게 된다.

불은 요리를 가능하게 했고, 추운 날씨를 견뎌낼 수 있는 난방은 물론 상위 포식자의 접근을 막을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돼 줬다.

이처럼 불을 관리할 수 있게 되면서 공동체라는 개념이 발생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불을 관리하기 위해 노동의 분업과 공동의 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특히 불을 이용한 요리가 가능해지자 같이 모여서 식사를 하게 된 인류는 비로소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된다.

같이 모여서 식사를 한다는 것은 어쩌면 인류가 행한 최초의 의례일지 모른다.

정기적으로 모여서 규칙적이고 반복적으로 같은 행위를 한다는 것은 예절로 이어지고, 종교로까지 확장하게 된다.

그래서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는 자신의 책 《날것과 익힌 것》에서 요리가 인간과 다른 동물을 구분하는 상징이라고 말한다.

식사 뿐이 아니다. 술을 마시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운좋게 자연에서 발효된 과일주나 꿀술을 발견하고 혼자 그 술을 마시는 경우는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든 같이 식사를 하는 공동체와 그 술을 나누게 되는데 가장 큰 이유는 상위 포식자로부터 서로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즉 술에 취하더라도 집단을 이뤄 모여 있다면, 포식자도 함부로 덤벼들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전통이 오랫동안 인류가 유지해온 식문화의 기본 질서가 된다. 

최근 등장하고 있는 혼밥과 혼술이라는 생활패턴을 낯설게 보는 세대가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생한 이후의 ‘포스트 2020’ 하에선 너무도 익숙한 개념이 돼버렸다.

게다가 가장 오래된 의례인 식사와 음주를 더는 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2020년 모임은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코로나 확진자가 다시 늘어나면서 지난주 방역당국이 내놓은 말이다.

팬데믹, 즉 전국적 대유행을 막으려면 최대한 모임을 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절박함은 뒤이어 발표되는 코로나 확진자 숫자에서 반증됐다.

하루 500명 이상이라는 낯선 숫자가 심리적 위축감마저 느끼게 한다.

12월은 모임의 시절이다. 한해를 마무리하고 다음 한해를 준비하기 위해 연중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의례가 집중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올해는 지난 2월부터 코로나가 발생하면서 일상적인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온 탓에 시민들은 최대한 모임을 자제해왔다.

따라서 송년 등을 위한 모임의 욕구와 동기가 극대화돼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어디 송년 뿐인가. 당장 코앞에 다가와 있는 수학능력시험 때문에 교육 부총리도 “수능까지 모든 일상적 친목 활동을 멈춰달라”고 목소리를 보태고 있다.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에 대한 반가운 소식도 이어지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북반구는 바이러스가 활동하기 좋은 추운 계절을 맞고 있어 확산 규모가 커지고 있을 뿐이다.
 
결국 거의 모든 친목을 위한 모임은 비대면으로 이뤄질 것 같다. 이미 ‘줌’같은 언택트 강의 및 회의 툴들을 모임에 적용한 사례가 많은데, 12월은 그 수요가 폭증할 듯하다.
 
직접적인 스킨십을 전달할 수는 없지만 서로의 안전을 위해 가상의 공간에서 공동체 의식을 확인해야 하는 참으로 야박한 시절이 됐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인간의 욕망이 초래한 바이러스를 기술이 제어하는 순간까지 참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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