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은 태산인데, 갈 길 먼 은행업의 활로는
훈련된 호연지기 갖춰야 한겨울 살아남아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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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해야 할 일은 많은데, 갈 길은 멀다.”

《논어》 ‘태백편’에 나오는 글이다. 공자의 제자 중 증자가 한 말로 선비, 요즘으로 치면 지도자들이 지녀야 할 마음의 자세를 다루면서 지도자의 처지를 말한 대목이다.

신임 김광수 은행연합회장이 취임사를 통해 은행 업계가 처해 있는 상황을 설명하면서 《논어》의 ‘임중도원(任重道遠)’을 인용했다.

유동성 과잉, 경제주체들의 부채 증가, 자산 버블, 제로 금리, 저성장 등 복합적인 리스크를 안고 있으면서, 동시에 비대면 디지털 경제의 확산 및 밀레니엄 세대로의 인구 중심축 이동 그리고 기후 변화 위기에 대응한 산업의 새판짜기 등 빠르게 변화하는 금융 환경.

게다가 사모펀드 불완전 판매사태 등으로 실추된 고객 신뢰도 등을 고려하면 일일이 열거하기가 벅찰 정도로 은행업의 미래는 오리무중이다.

물론 인류가 공동체를 구성한 이래 지도자의 처지가 위중하지 않은 적은 없다.

공동체 모두가 생존해야 하고 이웃 공동체와 갈등 없이 상생하면서 각종 자연재해를 극복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들이 지도자의 앞길에 널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야 할 일은 많은데, 갈 길이 멀었던’ 지도자들은 최고의 선택과 행동을 하기 위해 항상 고민에 빠진다.

임중도원에 담겨 있는 증자의 글 전체를 인용하면 그 고민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선비(지도자)는 너그럽고 굳세지 않을 수 없으니, 책임이 무겁고 길이 멀기 때문이다. 인(仁)을 자기의 책임으로 맡아야 하니 또한 무겁지 않은가. 죽어서야 그만둘 수 있으니 또한 멀지 않은가”

그렇다. 지도자는 인으로 자신을 세워야 하고, 인에 바탕을 둔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런데 항시 인에 기초한 행동을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질다’라는 일반적인 인의 뜻을 우리는 쉽게 생각한다.
‘관용’이라는 정도의 뜻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물론 감정의 흐름이 평온한 상황에서의 관용은 쉽다.

하지만 누구나 알듯이 일을 앞에 두고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어진’ 태도로 모든 일을 처리하기란 무척 어렵다.

그래서 비분강개해 인을 따르기는 쉽지만, 조용히 의(義)의 길을 나서는 것은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다.

공자는 물론 유가에 바탕을 두고 있는 중국 철학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해법으로 ‘호연지기’를 언급한다.

호연지기는 ‘사람의 마음에 차 있는 넓고 크고 올바른 기운’을 뜻한다. 율곡 이이는 호연지기가 천지에 가득하면 본래 선한 이치가 조금도 가려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즉 끊임없이 준비하고 대비해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마치 그리스 연합군을 맞아 전투에 나서는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가 내보였던 용기처럼, 두려움을 극복하고 공동체를 지켜내기 위해 훈련으로 용기를 내재화시키듯이 호연지기를 본연의 기운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동양의 철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김광수 회장의 ‘임중도원’은 그래서 호연지기를 바탕에 깔아야 한다.

그래야 추사 김정희의 선비화 중 백미라고 말하는 ‘세한도’에 등장하는 ‘추운 겨울이 된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는 《논어》의 구절 같은 은행들이 제 역할을 하게 된다.

아마도 그 은행들이 “고객은 은행을 원하지 않고, 서비스를 원한다”는 김 회장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한 은행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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