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보험업계에 제판(제조-판매) 분리가 가속화되고 있다. 제조에 전념하고 판매는 외부에 맡기겠다는 거다. 보험사에게 전속설계사란 매출에 대한 약속이다. 자사 상품을 밀어주는 조직을 얼마나 보유하느냐에 따라 매월 적게는 수십억에서 많게는 수백억원의 보험료수입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보험사는 왜 전속조직을 떼어내려는 걸까.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한화생명 본사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한화생명 본사

<대한금융신문=박영준 기자> 한화생명이 내년 초를 목표로 전속설계사 조직을 분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성사될 경우 약 2만여명에 달하는 전속설계사가 한화생명이 100% 보유한 법인보험대리점(GA) 소속으로 바뀐다.

일명 ‘자회사형 GA’다. 업계는 한화생명이 전속채널 분사로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더 많을 것으로 내다본다. 우선 비용 절감이다. 올 3분기 기준 한화생명은 7개의 지역본부, 61개 지점, 506개의 영업소를 보유하고 있다. 

한화생명은 자회사형 GA를 사업가형 지점장 형태로 운영할 전망이다. 사업가형 지점장은 비정규직 관리자가 운영한다. 회사에서 연봉을 받는 정규직 관리자와 달리 영업조직의 성과에 따라 수입이 달라지는 ‘사장님’이다.

지점 관리 및 유지비, 설계사 리쿠르팅 및 교육훈련비 등은 이제 한화생명이 아닌 사업가형 지점장의 몫이 된다. 한화생명은 아끼는 비용을 토대로 판매수수료 지급률을 높일 공산이 크다. 

현재 한화생명이 자사 노동조합과 갈등을 빚는 이유도 사업가형 지점장 도입 때문으로 알려졌다. 정규직 직원들이 한꺼번에 자회사에서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선 미래에셋생명이 미리 준비를 잘했다는 평가다. 최근 미래에셋생명도 3300명의 전속조직을 자회사형 GA인 미래에셋금융서비스로 이동시킨다. 이를 위해 앞서 전속 지점장 전부를 사업가형 지점장으로 변환해뒀다. 미리 분쟁 비용을 아낀 것이다.

업계는 한화생명과 노조간 진통을 시간문제로 본다. 사실상 한화생명 입장에선 전부 ‘고용승계’가 이뤄져도 잃을 게 없다는 분석이다. 사업가형 지점장 변환을 강제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레 정규직 지점장들은 사업가형 지점장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 

관건은 높은 판매수수료와 오버라이딩(OR) 수당체계다. 오버라이딩은 쉽게 말해 실적과 리쿠르팅에 대한 보상이다. 메리츠화재 모델이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메리츠화재는 설계사 리쿠르팅 실적에 따라 본부장, 지점장 등의 직급을 정해준다. 그들이 벌어오는 수수료 수입의 일부는 관리자에 귀속된다. 

정규직 관리자를 고집하더라도 높은 판매수당에서 비롯된 소득 향상에 대한 기대감을 뿌리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메리츠화재의 사업가형 지점장 도입 당시 전환율은 50~60%에 불과했다. 현재는 100% 사업가형 지점장 제도로 운영되고 있다.

메리츠화재는 다른 보험사들이 전속설계사 이탈로 고민일 때 나홀로 설계사 증가를 만들어낸 보험사다. 한화생명은 그간 메리츠화재식 ‘아메바경영’을 공부했다. 결국 잘나가는 지점장은 높은 소득을 누리고, 실적이 낮은 지점장은 자연스레 도태될 수밖에 없다. 저효율 판매조직을 정리하는 효과다.

또 하나는 설계사의 이탈을 막고, 활동성을 높일 수 있다. 자회사형 GA는 전속조직과 비슷한 성격을 갖지만, 다른 점이 있다. 삼성생명의 100% 자회사인 삼성생명금융서비스가 일례다. 삼성생명 소속 설계사는 자사 상품만 판매한다. 반면 삼성생명금융서비스는 삼성생명과 손해보험사 9곳의 상품을 취급한다.

보험사는 설계사의 가동률을 중요시 한다. 아무리 설계사 숫자가 많아도 활동하지 않은 설계사는 허수다. 한화생명 상품만 판매하는 무실적 설계사들이 손보사의 상품을 판매할 수 있다면 소득 보전이 가능해진다. 자회사형 GA는 활동성이 높아진 설계사들이 생보사 상품으로 한화생명만 취급한다면 이전보다 높은 생산성을 낼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있는 조직이다.

불안 요소도 있다. 2만여명의 전속설계사 중 저효율 조직만 정리될 것이란 보장이 없다. 이제 한화생명 소속 설계사라는 소속감(SHIP)도 없고, 회사 차원의 관리나 교육 등을 받기 어렵다. 판매수당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GA로 옮길 수 있다. 그 GA에서는 다른 생보사 상품 판매까지 가능하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메리츠화재도 전속채널을 유지하고 있지만 사실상 자사 상품만 판매하는 거대 GA를 운영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라며 “자회사에 얼마나 많은 판매수수료와 인센티브를 지급할 수 있는지가 제판분리가 성공할 수 있는 배경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화생명 관계자는 “영업선진화 방안에 대해 검토 중이나 어떠한 내용도 결정된 바 없다”라며 “사내 내부망을 통해 사업가형 기관장 등을 포함한 일체의 구조조정 방안은 검토한 바 없고, 고려대상도 아니란 걸 직원들에 알렸다”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