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09 19:30 (일)
[수불시네마기행 25] 향연 같은 ‘제인 오스틴 북클럽’
[수불시네마기행 25] 향연 같은 ‘제인 오스틴 북클럽’
  • 김승호 편집위원
  • 승인 2020.12.14 09: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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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틴 소설에 인물 서사 절묘하게 결합한 영화
사랑은 소통에서 시작, 그 출발점은 포도주 한잔
제인 오스틴은 로맨틱 코미디의 원조라고 할 만큼 다채로운 사랑이야기가 등장한다. 사진은 (제인 오스틴 북클럽)의 주요 등장인물들  / 사진:다음영화
제인 오스틴은 로맨틱 코미디의 원조라고 할 만큼 다채로운 사랑이야기가 등장한다. 사진은 (제인 오스틴 북클럽)의 주요 등장인물들 / 사진:다음영화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고대 그리스 시민들이 술을 마시며 토론을 했던 ‘심포지엄(향연)’이 연상된다. 책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에서 술을 마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일 것이다.

그런데 독서모임을 다룬 서구권 영화들은 한결같이 토론과 술을 같은 선상에서 다루고 있다.

본격적인 토론에 앞서 서먹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고 토론의 열기를 돋우기 위해서인지 두어 잔의 포도주가 자연스레 토론에 앞선다.

책을 엄숙하게 대하는 우리와는 달라도 매우 다르다.

영국에서 셰익스피어에 이어 많이 읽힌다는 문학가는 ‘제인 오스틴’이다.

로맨틱 코미디의 원조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달콤한 연애 이야기가 많아서인지 모르지만, 그녀가 글을 쓴 지 200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세계적인 팬덤이 뒤를 따르고 있다.

다양한 형태로 사랑을 찾는 6명의 중심 등장인물과 제인 오스틴의 소설 6권이 묶어져, 횡과 종으로 각자의 사랑을 찾아 나가는 영화 <제인 오스틴 북클럽>.

카렌 조이 파울러가 쓴 동명의 원작소설을 로빈 스위코드 감독이 지난 2007년 영화로 만들었다.

제인 오스틴의 대표작 여섯 권이 시퀀스를 이루며 영화의 서사구조를 채워나간다.

등장인물은 모두 사랑을 원하지만, 그 사랑을 찾지 못했거나 잃어버린 상태에서 또 다른 사랑을 갈구하고 있다.

물론 제인 오스틴의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사랑을 말이다. 

새로운 사람을 사랑하게 됐다는 남편의 말에 갑작스러운 이별을 일방적으로 통보받은 실비아(에이미 브레너먼).

자신의 사랑보다 그런 친구의 슬픔을 먼저 메꿔주고 싶어 하는 오지랖 넓은 독신녀 조셀린(마리아 벨로)과 그녀를 우연히 만난 뒤 호감을 느낀 SF소설광 그릭(휴 댄시).

뜨겁게 달아오른 화롯불처럼 사랑을 찾아 나서지만, 동성에게만 그 사랑을 느끼는 알레그라(메기 그레이스), 그리고 여섯 번 결혼을 해서인지 사랑에 대한 감정에서 등장인물 모두를 끌어안을 수 있는 베르나데트(캐시 베이커)와 남편과 교감할 채널을 잃고 방황하다 제자와 위험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있는 프루디(에밀리 블런트).

제인 오스틴의 주요 소설을 등장인물의 사랑이야기와 절묘하게 결합시킨 영화 (제인 오스틴 북클럽)의 포스터  / 사진:네이버영화
제인 오스틴의 주요 소설을 등장인물의 사랑이야기와 절묘하게 결합시킨 영화 (제인 오스틴 북클럽)의 포스터 / 사진:네이버영화

인물의 캐릭터는 물론 처해 있는 상황도 제각각인 사람들. 그들이 서로 사랑하고 헤어지고, 또 밀당하며 인연의 씨줄과 날줄이 엮여간다.

어차피 사랑이 그렇지 않던가. 예상대로 풀려가는 사랑은 애초에 사랑이라 말할 수 없는 것일지니.

첫 토론 책은 올 초 영화로도 개봉됐던 <에마>. 영화는 첫 책에서 사랑의 본질에 대해 등장인물들의 생각을 듣는다.

서로의 생각이 얼마나 벌어져 있는지 확인하면서 상처 입은 사랑을 다독이는 것 또한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에마>를 선정한 조셀린은 소설 속 에마처럼 자신의 오지랖을 펼쳐 보인다. 모임의 유일한 남성 참가자인 그릭을 끌어들인 것도 남편으로부터 이별을 통보받은 실비아에게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소설에서도 그랬듯 조셀린도 새로운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에마처럼 돼간다.

두 번째 책 <맨스필드 파크>에서도 참석자들은 서로가 생각하는 사랑의 견해차만을 확인한다.

서로의 지향점도 어긋나고, 어쩌면 소설처럼 ‘폭풍우’의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고딕 하우스를 재연하면서 그릭의 집에서 토론한 <노생거 사원>, 도서관 만찬장을 토론장으로 이용한 <오만과 편견> 그리고 <이성과 감성>에 이르기까지 주인공 조셀린의 화살표는 계속 어긋나고 프랑스어 교사인 프루디의 위험한 사랑의 감정도 고조된다.

갈등의 해소는 ‘세컨드 찬스’가 등장하는 <설득>에서 이뤄진다.

헐리우드 영화의 규칙 중 하나인 해피엔딩을 이 영화에선 ‘소통’에서 구해낸다. 편지와 솔직한 대화, 상대를 이해하는 마음 등 소통을 위해 필요한 모든 장치가 동원되며 상처 입은 사랑을 회복해 간다.

영화에서 술은 병원에서 이뤄진 <이성과 감성> 토론장을 빼고 모두 등장한다.

술의 종류도 포도주부터 리큐르까지 다양하다. 여기서 술의 의미는 소통의 시작을 여는 문두드림이자 문제를 풀어갈 실마리 같은 존재다. 그리스의 <향연>에서처럼 말이다.

그런데 토론의 대상이 다양한 사랑의 군상들이 모여 있는 제인 오스틴이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읽고 토론하면서 포도주를 즐기고 위스키의 향을 맡는 일을 상상해보자.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상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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