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베버, 강하게 또 천천히 구멍 뚫는 정치력 강조
코로나와 싸우며 무한경쟁 벌이는 상황에 필요한 미덕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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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막스 베버는 “정치란 단단한 널빤지에 강하게 또 천천히 구멍을 뚫는 일”이라고 그의 책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의하고 있다.

‘단단한 널빤지’는 견고하게 형성된 고정관념처럼 쉽게 변화되지 않는 정치적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고, ‘강하게’와 ‘천천히’는 그것을 깨뜨릴 수 있는 방법론을 말한다.

충격을 줘서 깨뜨릴 수 있는 강도로 추진하되 그 충격에 반발하지 않도록 천천히, 그리고 한 번에 이뤄지지 않아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그 일을 진행하는 것이 정치 행위의 요체라는 뜻이다.
 
이러한 정치 행위는 불가능해 보여도 몇 번이고 되풀이하면서 도전해야 달성할 수 있으며, 또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지도자 혹은 최소한의 의미에서 영웅이라고 베버는 정의한다.

하지만 지도자나 영웅이 아닐지라도 그 역할을 맡은 사람은 모든 희망이 깨져도 이겨낼 수 있는 확고한 용기로 자신을 무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실패의 확률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절박해 보이는 이러한 표현은 막스 베버가 이 책을 언제 썼는지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하고, 혼란에 빠져 있던 지난 1919년 자유학생연맹 바이에른 지부(뮌헨대학)의 요청으로 이뤄진 강연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독일의 정치 지형에서 가장 보수적인 바이에른 지역에서 가장 진보적인 학생들이 요청한 강연이라는 점이다.

위기에 빠져 있는 조국을 살릴 수 있는 정치 행위에 대한 열망이 가장 강한 시기에 석학 베버의 강연이 갖는 무게감은 남달랐다.

그래서 베버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청년들에게 촌철살인처럼 다가갔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는 앞으로 지도자로 나설 학생들에게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정치력을 각인시키기 위한 말들로 채워져 있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지도자라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런 임무가 주어진다면, 꺼진 희망까지 되살릴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주문하는 말까지 담은 것이다. 

특히 세상이 자기 관점에서 볼 때 너무 어리석고 야비하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하며 그 일을 추진할 수 있는 사람만이 ‘정치’라는 행위에 대한 소명이 있다고 설명한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 정도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그 일에 대한 열정적인 헌신과 안목이 전제로 깔려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자세가 꼭 정치 행위에 국한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어떤 조직이든 정치 행위는 수반된다. 조직의 관리는 물론 다른 조직과의 협력 등 사람이 만나 이뤄지는 모든 행위는 사실 정치 행위이기 때문이다.

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요즘처럼 대표 또는 임원들의 인사가 이뤄지는 시기에는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승진이라는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은 아니다.

하늘의 별 따기에 비유되는 임원 자리는 아마도 봉급생활자에게 주어진 경쟁 중 가장 치열한 경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임원이 되고 대표이사에 취임한 사람들이 모두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마술사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보다는 조직의 미래를 위해 강하게, 그리고 천천히 구멍을 뚫어온 사람들일 확률이 높다.

인사철만 되면 금융권은 항상 뒤숭숭해진다.

자리는 적고 바라는 사람은 많다 보니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그 자리를 염두에 둔 사람은 최소한 막스 베버가 제시한 미덕을 자신에게 채근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코로나와 힘겨운 싸움을 해가며 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조직 구성원들에겐 그 미덕이 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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