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개발 더 빨라지고, 팬데믹은 위기로 몰아가
결승선 없는 대결이지만, 팬데믹이 주는 의미는 존재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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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100년 만에 맞는 달갑지 않은 팬데믹. 지구촌 세밑을 우울하게 만들고 있는 코로나19의 일상은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지금은 그나마 익숙해 지려 한다.

멈춘 듯 돌고 있는 2020년은 누구에게나 특별한 해일 것이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전 지구적 차원에서의 멈춤과 봉쇄, 역사책에서나 사례를 찾을 수 있는 대재앙 때문에 우리는 거친 일상의 끝을 간절히 희망하게 됐다.

낯설지만 익숙해진 일상의 속을 들춰보면, 10년 전 역사학자 이언 모리스가 쓴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의 결론 부분이 떠오른다.

초기 인류의 행보부터 추적해, 왜 서양이 동양보다 앞섰는지 통사적으로 정리한 이 책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특이점’과 ‘해질녘’이 지구의 운명을 걸고 한판 대결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그 파국을 막을 수 있는 존재는 고고학자와 텔레비전, 그리고 역사라고 이언 모리스는 말하고 있다.

물론 역사학자의 몸값을 높이기 위해 허세를 담아낸 말은 아니다.

지구의 역사를 거시적으로 살펴보면 우리는 문명의 이행단계에서 철옹성처럼 단단하게만 느껴왔던 천정을 몇 차례 부수고 새로운 단계로 이행했고, 또 자연재해 내지는 인간의 탐욕이 만든 갈등으로 여러 차례 턱밑까지 다가온 붕괴의 순간을 경험했다.

이언 모리스는 그 지점을 놓치지 않고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과 SF작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언어를 빌려와 ‘특이점’과 ‘해질녘’의 대결로 오늘은 물론 앞으로 펼쳐질 지구의 역사를 정의하고 있다.

‘특이점’은 기술 변화의 속도가 무척 빠르고 그 충격이 깊어서 기술이 무한속도로 확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미래시기를 의미한다.

그래서 보통은 인공지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기점으로 말하기도 한다.

커즈와일은 자신의 책 《특이점이 온다》에서 대략 오는 2045년경 특이점을 돌파하리라 예측했지만, 지난 9월 세계지식포럼에서 오는 2030년 인간의 뇌를 인공지능과 연결하는 인터페이스 기술이 등장하는 한편, 과거 예측보다 더 빨리 특이점이 올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해질녘》은 SF작가 아시모프가 지난 세기 중반에 쓴 소설로 해가 여섯 개 뜨는 라가시라는 행성이 주 무대다. 라가시인들은 어디를 가든 태양을 적어도 하나 이상이 떠 있는 세상을 살게 된다.

즉 낮만 존재하는 행성인 것이다. 그런데 2049년에 한 번 일식이 발생한다. 여섯 개의 해와 달이 일직선으로 놓이는 일식이 발생하면서 라가시인들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암흑 속에서 자신들의 문명을 파괴한다.

그래서 ‘특이점’은 새로운 사회로의 발전을 말한다면, ‘해질녘’은 문명의 붕괴를 은유하면서 이언 모리스는 책의 후반부를 묵시록처럼 써 내려가며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조심스럽게 경고장을 보여준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역사의 모든 것이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2020년에 ‘특이점’과 ‘해질녘’을 동시에 소환한 이언 모리스의 책이 떠오른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오늘도 여전히 ‘특이점’을 향한 인류의 거침없는 도전이 이뤄지고 있고, 팬데믹 그 자체가 인류의 문명을 붕괴로 몰고 갈 수 있는 직접적인 경험이기 때문이다.

이언 모리스 자신도 100년 전의 스페인 독감과 21세기 들어 줄지어 발생한 사스와 메르스, 돼지독감과 조류독감 등의 감염병을 지적하며 ‘해질녘’이 다가오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게다가 팬데믹이 발생하면 전 세계 경제 규모가 5% 축소된다는 세계보건기구의 지적도 가감없이 책에 기술했다.

그래서 이언 모리스는 앞선 사회가 저지른 실수의 세부 내용을 밝혀낼 고고학자와 그들의 발견을 알려줄 텔레비전이라는 매체,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역사를 통해 다가올 파국을 막아내자고 말한다.

며칠 남지 않은 2020년, ‘특이점’과 ‘해질녘’을 동시에 경험하는 오늘, 우리는 내일을 위한 또 다른 해답지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 식으로라도 2020년과 이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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