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 증가속도 조절을 이유로 지난 연말 굳게 닫혔던 신용대출 문이 새해 들어 은행별 연간 총량 한도가 리셋되자 다시 열렸다.

안 그래도 자금 수요가 많은 연말연시, 억눌렸던 대출 수요는 판매 재개와 함께 폭발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을 포함한 5대 은행이 올해 첫 영업일인 지난 4일부터 5일까지 이틀간 취급한 신용대출은 약 3400억원 규모다.

금융당국이 은행권의 매달 신용대출 신규 취급액을 2조원 수준으로 유지하도록 압박하는 상황에서 이틀 만에 전체의 17%가 소진됐다.

지난 5~7일에야 판매 중단이 풀린 주요 신용대출 상품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달 대출 증가세는 신용대출을 걸어 잠그기 전, 그 이상으로 솟아오를 수도 있다.

은행권 관계자들은 예상했던 전개라고 말한다. 당국의 가계대출 조이기 압박에 판매 중단카드를 꺼내 들긴 했지만, 대출 신청 분산 효과는커녕 판매 재중단이라는 만약을 대비한 가수요까지 몰리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며 고개를 내젓는다.

금융당국은 새해 들어 대출 영업에 재시동을 걸기 시작한 은행권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겨우 숨 고르기에 들어간 신용대출 증가세에 다시 과열 양상이 나타나면 더 강력한 대출 규제책으로 언제든 개입할 수 있음을 공식 석상에서 경고했다.

당국이 가계대출 급증에서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빚투’, ‘영끌’ 열풍으로 가계 빚이 단기간에 주식 시장과 부동산 대기 자금 등으로 대거 빠져나가고 있다는 거다.

은행은 규제 산업이다.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는 ‘자율적 관리’라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은행은 없다. 밉보였다가는 신규 사업은 물론 기존 사업 운영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신용대출 신규 취급을 줄이기 위해 어떤 행동이든 보여야 하는 은행들은 지난해 말 시행한 고소득·고신용자에 대한 신용대출 한도 축소를 올해에도 이어갈 방침이다.

이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까. 덩어리가 큰 대출부터 막고 보자 식 대처는 가계대출 증가속도를 반짝 제어하는 임시방편일 뿐, 오히려 유동성 부작용을 일으켜 실물 경기 회복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전문가들도 각종 보고서에서 대출 조이기의 희생양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절벽에 내몰린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실직자가 될 수 있다고 지목한다.

단순히 부채 총량을 제한하는 것보다는 실제로 상환 능력이 있는지를 보고 평가해서 관리하는 것을 경제 뇌관을 지키는 보다 중요한 숙제다.

결국 신용 리스크가 적은 이들에 대한 대출 옥죄기는 ‘언 발에 오줌 누기’다. 은행권에선 금융당국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조성한다며 뒷말만 무성하다.

규제로 압박하는 이 따로, 현장에서 책임지는 이 따로다. 가계대출 급증이라는 사회적 분위기를 두고 본연의 업무를 했을 뿐인 은행에 대책을 닦달하는 건 면피성 행동에 그칠 수 있다.

근본적 문제의 해결 없이 수치적인 결과만 강요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당국은 현장의 뒷말도 귀 기울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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