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기본법 어겼지만 적극행정으로 판단

한국금융연수원이 지난해 선보인 KBI 금융DT 테스트 자격소개 안내. (이미지= 한국금융연수원 홈페이지 캡처)

<대한금융신문=하영인 기자> 한국금융연수원이 자격기본법에 명시된 ‘민간자격 사전 등록제’를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위원회는 이를 오히려 적극행정 사례로 보고 징계 처벌을 면책해 ‘봐주기’ 논란이 나오고 있다.

법 위반 두고 기관주의 면책

25일 금융위에 따르면 지난해 실시한 종합감사에서 민간자격을 주무부처에 미등록하고 두 차례 시험을 진행, 자격기본법을 위반한 금융연수원에 ‘기관주의’에 해당하는 제재를 면책했다.

금융위는 면책 사유에 대해 “자격기본법상 ‘민간자격 사전등록제’는 거짓·과장광고 및 역량 없는 민간자격관리자의 불법적 자격운영에 따른 소비자피해를 방지하기 위함”이라며 “자격기본법상의 등록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에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 금융연수원은 디지털금융 전반에 대한 기본 지식과 업무 활용 능력 등 금융DT(Digital Transformation) 관련 기본 역량을 평가하는 ‘KBI 금융DT 테스트’를 신설했다.

감사에서 문제가 된 건 금융연수원의 자격기본법 위반행위다. 자격기본법 제17조2항에서는 민간자격을 신설해 관리·운영하려는 자는 해당 민간자격을 주무부처에 등록해야 한다.

금융연수원은 주무부처인 금융위 등록 없이 자체 규정으로 DT테스트를 2회 시행했다. 3~4년 주기로 시행하는 종합감사 시기가 도래하지 않았다면 더 늦게 발견됐을 사안이다.

금융위는 KBI 금융DT 테스트가 응시자의 디지털금융 관련 기본 역량을 평가하는 취지에 따라 합격 여부가 아닌 등급제 또는 점수제로 변경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권고했다. 또 KBI 금융DT 테스트를 금융위원장에 등록하라고 시정 조치를 내렸다.

‘봐주기 처분’ 논란

금융위가 면책 결정을 내린 배경은 금융연수원이 자격이 아닌 자체인증테스트임을 명기했고, 자격기본법상 등록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에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었다고 볼 수 없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금융위 관계자는 “잘못은 엄벌해야하는 게 맞지만, 연수원은 범법행위를 저지를 만한 기관이 아니다. 연수원의 덩치에 비해 허술했던 건 사실”이라며 “지적 위주의 감사가 아니라 컨설팅 위주의 감사가 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는 금융위가 법 위반에 해당하는 중대한 사안을 ‘봐주기 처분’으로 끝냈다고 보고 있다.

일례로 국제통용 자격시험을 운영해온 A협회는 민간자격 등록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주무부처인 금융위에 등록 신청을 했으나, 과태료를 낼 수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현재는 금융위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민간자격을 신설할 때 주무부처에 등록하지 않아 자격기본법을 위반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금융위의 이번 면책 결정이 금융위의 제 식구 감싸기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손해보험협회장 등을 지낸 문재우 원장은 금융위 출신으로, 취임 당시 ‘모피아(MOFIA)’ 논란이 일기도 했다.

모피아는 기획재정부의 전신인 재무부(MOF)와 마피아(MAFIA)의 합성어로 재무를 담당하던 관료들이 마피아처럼 세력을 구축해 산하기관을 장악하는 현상을 빗댄 표현이다.

민간자격 오인한 응시자 어쩌나

금융위 권고에 따라 금융연수원은 DT테스트를 현재 합격제(60점 이상)가 아닌 등급제 또는 점수제로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미 시험을 치른 응시자들은 동일한 시험을 봤지만, 민간자격시험이 아닌 그저 인증테스트로 불이익에 처할 상황에 놓였다.

금융연수원 홈페이지에는 기존 민간자격 시험과 인증테스트를 한데 묶어 자체인증테스트라고 명시하거나, 자격 소개를 하는 등 수요자 입장에서는 민간자격 수준의 테스트로 오인할 만한 요소가 포착된다. 연수원의 인증서가 취업 또는 인사평가 등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만하다고 보일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 지난해 별다른 홍보 없이 진행된 두 차례 테스트에 4000명이 넘는 응시자가 몰렸다. 총 4371명의 응시자 중 3955명이 합격, 90% 이상의 합격률을 기록하면서 변별도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더해졌다.

금융 자격시험을 운영 중인 한 관계자는 “금융연수원 정도로 공신력 있는 기관이 민간자격에 대해 잘 몰랐을 리 없다. 법을 어기고 자체적으로 내놓은 테스트로 인해 수천명의 기 응시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지 우려된다. 구제 방안 마련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이어 “적극행정 면책제도는 법을 어겨도 좋다는 취지가 아니다. 당연히 법을 준수하되 행정하는 과정에서 잘못이나 손실이 발생했을 경우 이를 면책해주는 것”이라며 “정상참작을 해 양형을 해야 하는 게 아닌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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