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사회·지배구조’ 등 새로운 가치에 금융권도 주목
공공재로서의 역할 확대하며 건강한 자본 운동 북돋아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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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제도가 만들어지고, 이를 뒷받침하는 경제 논리가 적용되면 전통마저도 생존을 위해 모습을 바꾼다.

기존 질서에서는 신주처럼 모셔졌지만, 새롭게 설계된 질서에선 우선순위로 배제될 수 있기에 변신을 서두르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제도주의의 주장은 여전히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현대 사회는 다양한 제도와 전통,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신화와 전설과 함께 존립한다.
구동되는 얼개가 다를 수는 있지만, 서로 관계를 맺고 얽히면서 다층적인 구조로 제도와 전통이 어울리게 된다.

자연스레 이 속에 담긴 신화와 전설은 역사성에 힘입어 여전한 생명력을 구가한다. 하지만 제도와 질서가 변화되는 순간, 신화와 전설마저도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는다.

스토리가 없는 상품이 힘을 발휘할 수 없듯 제도와 질서도 역사성을 드러내기 위해 스토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사구조가 변할 수는 있지만,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것은 신화와 전설, 즉 ‘이야기’다.

그렇다면 모든 혁신에 입각한 제도와 질서가 기존 제도를 대체하며 중앙권력을 차지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돈’과 연결돼야 기회가 주어진다. 돈이 되면 혁신의 수고로움이 따르더라도 자본이 먼저 나서서 따르게 된다.

규범적으로 아무리 옳아도, 그리고 그 효과가 긍정적일지라도 무조건 새로운 도덕률이 사회질서로 재구조화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관련 편익이 크다고 해서 해당 제도가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그것보다는 시장 주체들이 새로 제기된 규범에 동의하면서 긍정의 신호를 보여야만 생명력을 얻고 제도화되는 것이다.

기술의 발전이 진보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희망처럼 여전히 받아들여지지만, 기술의 지향점이 규범적이지 않다면 외려 절망을 안겨줄 수도 있다.

같은 이치에서 제도의 발전도 진보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희망일 수도, 또 절망일 수도 있다. 

현재까지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에 대한 시장 주체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아니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국제질서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조건 없이 수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은행들이 그랬고, 보험사들이 그렇다. 언론에선 코로나와 디지털 다음으로 ESG 관련 단어가 많이 등장할 정도다.

환경 문제는 물론 사회, 인권 등의 가치까지 반영된 투자가 이뤄져야 하며, 자본의 성격도 더욱 투명해져야 하는 세상. 지난 2006년 처음 UN이 제정한 ‘책임투자원칙’에 따라 도입되기 시작한 제도다.

15년의 세월이 흘렀고, 이제 세계는 ESG 경영에 모두가 한목소리로 화답하듯 도장을 찍고 있다.

윤리 및 준법 경영과 에너지 친환경에 대한 요구는 그동안 숱하게 제기된 사회적 과제였다.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고려 및 사회공헌 등의 포용력을 발휘하는 금융의 역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국제적 관행으로 자리 잡은 순간, 우리나라의 금융회사들도 대세를 따르고 있다. 늦어서 서운하기보단 이제라도 시작하니 박수를 보낼 일이다.

하지만 흉내만 내면 더 큰 손실이 따른다는 것쯤은 알고 진행됐으면 한다. 금융의 사회적 역할이 그만큼 강조되는 시기이니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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