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에서도 분노 게이지 파악 중요한 시대
분노를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관용’ 뿐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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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인류가 기록을 남긴 이래 분노는 가장 흔한 작품의 소재가 됐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나 아이스킬로스의 희곡 <결박한 프로메테우스>, 에우리피데스의 희곡 <메데이아> 등 다양한 문학작품엔 분노가 갈등의 핵심 요인으로 등장한다.

어디 문학작품뿐인가. 정치도 그렇고 전쟁도 분노가 기폭제가 돼 역사를 재단하게 된다.

아테네 민주주의의 조종이라고 일컬어지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한 철학자에 대한 아테네 시민들의 분노에서 시작됐고,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전체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만든 펠로폰네소스 전쟁도 작게는 패권 지향적인 아테네에 대한 여타 도시국가의 분노에서 촉발됐다.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너무도 유명한 《일리아스》의 첫 문장이다.

오죽하면 2700년 전에 쓰인 이 서서시의 시작이 분노였겠는가.

그런데 아킬레우스만의 분노로 그치지 않는다. 분노의 문학이라고 할 만큼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분노에 쉽게 노출된다.

작품 속에 담긴 분노의 연쇄 사슬은 이렇게 흐른다. 딸을 되찾아오지 못한 사제 크리세스의 분노의 기도는 아폴론 신의 분노를 낳았고, 아가멤논은 그 분노에 따라 티메를 아킬레우스에게 빼앗겨 분노하게 된다.

하지만 아가멤논이 힘의 논리로 아킬레우스로부터 티메를 빼앗자 이 서사시의 핵심 분노 중 하나인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일어난다.

그리고 결국 파트로클로스가 죽으면서 친구 아킬레우스는 분노의 극한에 휩싸이게 된다.

이처럼 《일리아스》의 중심축을 관통하는 것은 분노다.

그렇다면 호메로스는 고대 그리스 시민들에게 분노를 알리기 위해 이 작품을 썼을까. 그렇지는 않다.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가 아킬레우스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수모를 겪는 과정에서 헥토르의 아버지 프리아모스는 분노의 사슬을 끊어내고 적장 아킬레우스를 찾아가 선물을 주고 죽은 아들의 시체를 찾아온다.
 
분노를 이기는 것은 화해였다.

서울과 부산시장 재·보궐선거가 얼마 전에 끝났다. 선거전은 모두 상대 진영을 분노하게 만드는 정치 선전으로 채워졌고, 정책은 보이지 않았던 선거였다.

그런 가운데 여당은 패배했고, 야당은 승리했다. 서로들 저마다의 승패 원인을 분석하기 바쁘다.

본질은 분노였다. 토지와 주택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한 청년들의 분노였고, 코로나에 밀린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에 대한 분노였다.

어디 분노가 이것뿐이겠는가. 말을 붙이면 모든 것이 분노가 되어 화살로 돌아오는 시절이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며 아테네를 배회한 소크라테스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는 말의 자유를 사랑했던 아고라 시민들의 역설적인 분노였다.

자신들의 무지를 드러내도록 만든 대화술은 아테네 시민들의 자긍심에 손상을 가했다.

그래서 기소의 근거였던 ‘신에 대한 불경건죄’나 ‘아테네 청년을 타락시킨 죄’는 명분에 불과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대화법으로 인해 죽음으로 내몰린 것이다.

리더십은 도덕성을 강조한다고 해서 관철되는 것은 아니다.

도덕적 흠집이 드러나게 되면 외려 상대적으로 더 심한 손상을 받게 된다. 그런 점에서 대중의 분노는 자세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질래트의 성차별적인 광고와 나이키의 콜린 캐퍼닉 광고는 혐오를 광고로 연결해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은 광고들이다.

하지만 혐오는 분노로 이어졌으나, 매출은 반대로 늘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뜨고 있는 영역이 분노 마케팅이기도 하다.

시민들의 분노까지 마케팅으로 연결되는 시대이니, 비즈니스의 영역에 있는 사람들은 다가오는 정치 시즌에서의 시민들의 분노 게이지에서 눈을 떼면 안 되는 상황이 된 듯하다.

하지만 호메로스가 《일리아스》에서 제시하고 있는 답을 잊지는 말자.

아들 헥토르가 적장 아킬레우스에게 죽임을 당했음에도, 그래서 가장 슬퍼하고 분노해야했을 프리이모스가 선물을 싸들고 가서 아킬레우스에게 아들의 시신을 찾아온 것은 용서였고 관용이었다.

그래서 분노를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이 관용이라고 말한 것이다. 비즈니스 영역에서도 관용에 더 많은 관심을 보내자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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