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부 안소윤 기자
금융부 안소윤 기자

“새우깡을 사러 마트에 갔는데 새우깡 설명서 교부, 건강검진 결과서 심사, 새우함유량에 대한 설명, 밀가루 및 새우 알레르기에 대한 위험 고지, 본인 건강상태 대비 새우깡이 건강하지 않은 식품임을 확인, 위 내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이해하였음 서명…이 절차를 다 거쳐야 새우깡을 사 먹을 수 있습니다. 이게 금융소비자보호법의 현실입니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의 금소법 도입 이후 영업현장 상황에 대한 소회다.

지난 3월 25일부터 시행된 금소법은 금융사의 불완전판매를 차단하기 위해 마련된 법이다. 일부 상품에만 적용하던 6대 판매규제(적합성·적정성 원칙, 설명의무 준수, 불공정영업행위 금지, 부당권유행위 금지, 허위과장 광고 금지)를 모든 상품으로 확대 적용하는 것을 규정한다.

금소법이 도입된 지 한 달여가 지났지만, 여전히 현장에는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기존보다 3배 이상 길어진 업무 처리소요 시간 때문이다.

제재에 대한 불안감으로 설명서를 빠짐없이 읽고 모든 절차를 녹취하는 과정이 생기면서 외화예금 가입에 30분, 펀드 가입에는 1시간 이상 걸리고 있다. 직원도 소비자도 피로감이 쌓인다.

일선 창구에선 소비자들에게 모바일뱅킹 등 비대면 서비스 이용을 유도하는 분위기도 뚜렷하다. 규제 리스크를 우려한 직원들의 책임 회피성 행태로, 상품판매 실적을 채우는 것보다 금소법에 잘못 걸리면 안 된다는 부담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는 거다.

은행권 전반에서 쏟아지는 ‘앓는 소리’에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1일 은행장들을 불러 애로 및 건의사항을 청취하는 시간을 가졌다.

금융위는 이날 은 위원장이 “금소법 시행으로 은행 창구 직원들의 부담과 현장 혼란이 있었던 점에 대해 안타깝고 유감스럽다”며 “소비자의 편의를 위한 법안인데 소비자가 불편해서는 안된다. 현실적으로 더 고민해보겠다”고 은행장들을 타일렀다고 밝혔다.

간담회 이후 20여 일이 지난 26일, 금융위는 ‘금소법 시행 한 달 현황 점검’ 자료를 내놓고 ‘법 시행 초기 금융 영업현장의 혼선은 그동안 고착됐던 거래 편의 위주의 영업 관행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자찬했다.

업계 현장 목소리를 열심히 청취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듯 ‘법 시행 후 영업현장 애로사항 주요사례’도 늘어놓았다. 그러나 실질적인 문제 해결책은 없었다.

가장 큰 현장 애로사항인 업무 처리 소요시간 지연 문제에 대해 금융위는 ‘상품설명에 걸리는 시간이 과거에 비해 다소 길더라도 충실하게 설명하고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금융사와 소비자 모두에게 도움 된다’며 어벌쩡한 입장을 취했다.

또 상품설명 과정에서의 어려움은 판매자와 소비자가 모두 형식적 절차로만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탓했다.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는 설명의무 중요성에 대한 소비자 홍보 강화를 제시했다.

설명서를 읽느라, 듣느라 지친 직원과 소비자에게 영혼 없이 읽고 들어서 그런 것이라 말하고, 설명의무 이행 효율화 대책 마련 요구에 홍보를 강화하겠다는 건 동문서답에 지나지 않는다.

당국은 업계와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논의했다지만 정작 현장에선 허무맹랑한 대책에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소비자보호와 거래편의 간 균형을 맞추기 위해 마련하고 있다는 가이드라인은 한 달여가 지난 지금까지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

법 시행 초기 단계에 있어 어느 정도의 혼란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성급하게 내놓은 탁상공론식 ‘자화자찬 점검표’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금소법 졸속 적용 비판을 피하고 싶다면, 현장 불만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한 땜질식 전시행정이 아닌 진짜 소통에 노력해주길 바란다.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