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소영 대표, 부친과 소통 위해 시작한 술빚기, 상업양조로 연결
항아리 발효·소줏고리 증류 등 모든 과정 손으로 하는 전통 고수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의암호를 끼고 경춘가도를 따라 춘천을 향한다. 새로운 술도가를 찾아 나선 길. 봄은 춘천에도 깊이 내려앉았다.
도착한 양조장의 이름은 ‘지시울’. 마을의 옛 이름을 따서 술도가의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지시울이라는 단어에 왠지 시적 운율이 느껴진다. 한 마을에 수십 명의 박사가 배출되었다 하여 일명 ‘박사마을’이라고 불리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마을 초입에 자리한 양조장 건물과 주변의 풍광은 그 자체로 ‘별유천지비인간야(別有天地非人間也)’다.
대문을 들어서면 넓게 펼쳐진 잔디밭이 보이고 건물 앞으로 몇 그루의 소나무가 호위무사처럼 서 있고, 건물 뒤편으로 조금 올라서면 술의 부재료로 사용할 수 있는 식물들이 제법 심어진 텃밭이 나온다.
마치 술을 위한 공간으로 하나의 운문이 완성되는 느낌이다.
차(茶)를 공부하면서 우연히 손에 넣은 이 건물은 원래 누군가의 별장이었다고 한다.
이 집을 8년 전에 경매로 받아 살림집으로 만든 것. 이렇게 남다른 분위기의 공간이다 보니 술을 만드는 곳이라기보다 술을 마시고 싶은 공간으로 더 다가온다.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고 하던가. 이런 공간에서 빚어지는 술은 경치만큼 맛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예상은 적중했다.
아버지와 소통하기 위해 술을 빚기 시작했다는 지시울 양조장의 유소영(54) 대표.
인생의 멘토였던 아버지의 생신 때 친구분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술을 만들어야겠다는 것이 그가 술을 빚기 시작한 소박한 이유였다.
그런데 일이 커졌다. 아버지와 나눌 수 있는 공통의 화제가 생긴 건 좋았지만, 술 공부 삼매경에 32만km의 거리를 오가며 술을 배우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난 2018년 봄부터 한국전통주연구소(소장 박록담)에서 배운 술은 시간이 흐를수록 유 대표를 고민에 빠지게 했단다.
배우면 배울수록 선택의 기로에 내몰리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는 것이다.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아서 시작한 술 공부지만, 돈 많이 들어가는 고급 취미로 끝낼 것인가, 아니면 양조장을 차려 상업 양조로 나설 것인가의 갈림길에서 방황하게 된 것이다.
빚은 술이 맛있다고 다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더 그랬던 듯싶다.
그러나 유 대표는 자신의 살림집 지하에 양조장을 내기로 한다. 재미있어 시작한 일인데다 여기서 그만두면 미련이 남을 것 같아서란다.
지하 공간을 알뜰하게 공간 구분을 해서 작업장과 발효실 및 숙성실을 갖췄다. 그리고 빚는 모든 술은 항아리에서 발효 및 숙성시킨다. 손이 많이 가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유 대표는 막걸리와 약주, 소주 등 3종류의 술을 빚는다. 술 이름은 ‘화전일취(花前一醉). 꽃 앞에서 같이 취한다는 정도의 뜻이다. 양조장의 입지를 고려해 박록담 소장이 지어준 이름이다.
막걸리와 약주는 멥쌀과 찹쌀로 두 번 빚어 술을 완성한다. 80일 정도 발효시키고 40일 정도 더 숙성시킨다.
그러니 지시울양조장의 술은 최소 4개월 정도 걸려야 세상에 나올 수 있다.
소주 증류도 다들 사용하는 동증류기를 마다하고 질그릇으로 만든 소줏고리를 사용한다.
예전부터 만들던 방식을 고수하고 싶었단다. 비록 몸은 고되지만, 후회하지 않기 위해 시작한 일이라서 자신을 더 엄격하게 다독인 듯싶다.
그렇게 만들어진 술, 화전일취는 지난 2월 ’2021대한민국주류대상‘ 약주 부분에서 대상을 수상한다. 제법 근사하게 세상에 유 대표의 술을 내놓은 것이다.
알코올 도수 15%의 약주는 감미와 두터운 알코올감이 꽃향기와 함께 훅 들어온다. 맛의 균형감도 좋다.
상을 받은 술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12%의 막걸리는 감미와 산미가 잘 어우러져 있다.
최근 한 TV 프로그램에 소개돼 많이들 찾는 술이라고 한다. 소주는 65%로 증류해 숙성시킨다고 한다.
판매되는 소주는 52%와 38% 두 종류다. 귀하게 축하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술이다.
유 대표는 보이차와 자신의 술을 같이 즐기길 바란다. 지시울의 정원에서 이 둘을 ‘차곡차곡’ 즐길 수 있는 날을 기대해본다.
아마도 이런 시음은 숲이 제 색깔을 진하게 뿜어내는 봄이 제격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