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23 19:50 (수)
악귀와 삿된 기운 쫓는 ‘귀룽나무’
악귀와 삿된 기운 쫓는 ‘귀룽나무’
  • 김승호 편집위원
  • 승인 2021.05.17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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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 필 때 숲에서 가장 먼저 잎 내는 부지런한 나무
궁궐에도 ‘봄소식·권농’ 먼저 알기 위해 많이 심겨 있어
귀룽나무는 멀리서 보면 구름처럼 꽃이 피어있다고 하여 북한에서는 구름나무라고 불린다고 한다. 나무의 수형이 용트림을 하는 모습이어서 구룡나무라 불리다 나중에 귀룽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사진은 귀룽나무의 꽃이다.
귀룽나무는 멀리서 보면 구름처럼 꽃이 피어있다고 하여 북한에서는 구름나무라고 불린다고 한다. 나무의 수형이 용트림을 하는 모습이어서 구룡나무라 불리다 나중에 귀룽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사진은 귀룽나무의 꽃이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우리는 봄의 전령사를 매화쯤으로 알고 있다.

매화가 핀다는 것은 추운 겨울은 곧 지나고 따뜻한 봄이 곧 온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렇다면 숲에서 봄을 알려주는 식물은 무엇이 있을까. 모두가 잎을 떨궈 앙상한 나뭇가지만 추상화처럼 제 살을 드러내고 있을 때, 연초록의 이파리를 내면서 이제 봄이 왔다고 알려주는 나무가 하나 있다.

산수유꽃이 피면, 이 나무에도 이파리가 난다. 그러면 농사철이 시작됐다는 것을 직감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창덕궁과 창경궁 등의 궁궐에도 이 나무는 제법 식재돼 있다.

농업을 중시했기에 소식을 먼저 느끼고 싶었을 것이고, 삭막한 겨울의 무채색에 초록을 입혀 궁궐에 활기를 불어넣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도시의 벚꽃이 지면 산에는 산벚나무가 피기 시작한다. 도시의 왕벚과 다른 점은 이파리가 난 뒤 꽃이 핀다는 것이다.

그때 같이 하얀색의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나무가 바로 이 나무다. 이름은 귀룽나무다.

자주 부르지 않아 이름은 낯설다.

도시의 봄꽃만큼 화려한 색깔을 아니지만, 하얀색의 꽃들이 뭉텅이로 핀 것을 우리는 자주 바라봤고, 혹시나 멀리 피어 있는 이 나무를 보고 아카시라고 오해하기도 했었다.

하얀색의 꽃은 아까시와는 다른 향기를 가졌다. 그 나무 밑에 있노라면 향기가 발길을 잡을 챌 정도다.

물론 요즘처럼 마스크를 쓰고 살아야 하는 시절엔 제대로 느끼기 힘들지만 말이다.

북한산의 백운대에서 대동문을 지나 북한산성 입구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태고사라는 사찰이 있다.

이 절집의 대웅전 앞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180년 된 귀룽나무가 있다.

봄철 가장 먼저 이파리를 내는 나무가 귀룽나무다. 물을 좋아해 물이 흐르는 계곡에는 지천으로 귀룽나무가 심겨 있다. 사진은 북한산 태고사 대웅전 아래 식재돼 있는 보호수 귀룽나무다. 두 그루 모두 귀룽나무이며 우측이 보호수로 지정돼 있다.
봄철 가장 먼저 이파리를 내는 나무가 귀룽나무다. 물을 좋아해 물이 흐르는 계곡에는 지천으로 귀룽나무가 심겨 있다. 사진은 북한산 태고사 대웅전 아래 식재돼 있는 보호수 귀룽나무다. 두 그루 모두 귀룽나무이며 우측이 보호수로 지정돼 있다.

흐드러지게 편 이 나무도 멋지지만, 대웅전에서 북한산의 속살을 보는 재미는 북한산의 여러 봉우리에서 보는 풍광과 사뭇 다르다.

도시를 벗어나 깊은 산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 그저 좋을 뿐이다.

귀룽나무는 버드나무처럼 물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러니 계곡 길을 타고 내려오는 하산길에 가장 자주 만나는 나무가 귀룽나무다. 4월 중순 아직 산벚나무꽃이 피어 있을 무렵 귀룽은 제철을 맞는다.

그런데 꽃은 오래가지 않는다. 봄비 한 번에 모두가 미련 없이 사그라진다. 그러면 그때서야 아카시는 제 시절을 직감하고 꽃봉오리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부지런한 이 나무를 우리는 악한 것을 쫓는 나무로도 기억한다.

무형문화재 중 하나인 〈양주별산대놀이〉에 귀룽나무 가지가 등장하는데, 등장인물 중 하나인 취발이 손에 쥐어져 있다.

취발이는 구시대적인 인물인 노장을 쫓아내며 이 가지를 흔들거나 땅을 치거나 한다. 그 행위를 통해 우리는 악귀나 삿된 기운을 내몰고 새로움을 맞이하는 것이다.

또 다른 무형문화재인 〈봉산탈춤〉에선 버드나무 가지가 이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귀룽나무는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자라는 나무였고, 또 그런 만큼 귀한 뜻으로 사용되는 나무였다. 하지만 이름은 어쩐지 입에 잘 붙지 않는다.

이 나무의 이름이 귀룽이 된 것은 나무의 수형이 용트림하는 듯해서 구룡(九龍)나무라 불리운 데서 출발한다. 즉 구룡이 귀룽으로 바뀐 거란다.

그래서일까. 석가모니의 탄생 설화에 등장하는 아홉 마리의 용 덕분에 폭포의 이름이나 연못의 이름에 ‘구룡’이 자주 사용된다.

그리고 이런 폭포나 연못이 있는 곳에 귀룽도 많이 심겨 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산사 주변에도 이 나무가 많이 식재된 것이다.

앞서 설명한 북한산 태고사 앞의 보호수가 그렇고 원주 치악산 구룡사 응진전 뒤편에 있는 귀롱나무와 영천 은해사 기기암 마당에 심겨 있는 두 그루의 귀룽나무도 그렇다.

부처님과의 인연을 나무의 이름을 통해 연결한 옛사람들의 낭만이지 싶다.

찬바람 가시지 않은 3월에 나뭇가지에서 난 새순을 보면 반갑게 귀룽나무와 인사하자.

그리고 벚꽃 진 4월에 푸른 잎 사이사이에서 하얗게 꽃들이 흐드러지게 핀 것을 보면 반가워하자.

이 나무가 우리에게서 나쁜 기운을 쫓아내 줄 반가운 나무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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