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25 15:40 (일)
쓰임새 많아 흔하지 않은 물푸레나무
쓰임새 많아 흔하지 않은 물푸레나무
  • 김승호 편집위원
  • 승인 2021.05.24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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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여인을 추억하지만, 조선시대엔 살벌한 곤장
재질 강해 현재도 야구 배트와 식탁 등 가구로 사용
물푸레나무는 쓰임새가 많아 100년을 넘은 나무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천연기념물로 등재된 파주 무건리와 화성 전곡리 물푸레나무도 각각 190년과 350년이 됐다고 한다. 사진은 파주 교하에 있는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된 물푸레나무로 100년을 넘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푸레나무는 쓰임새가 많아 100년을 넘은 나무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천연기념물로 등재된 파주 무건리와 화성 전곡리 물푸레나무도 각각 190년과 350년이 됐다고 한다. 사진은 파주 교하에 있는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된 물푸레나무로 100년을 넘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시인 오규원의 ‘한 잎의 여자’라는 시를 좋아했던 시절이 있었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라는 소절을 읽을 때마다 얼마나 이파리가 작았길래 이 시인은 이 나무의 이파리를 비유하며 사랑하는 여인을 추억했을까 생각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나무다 보니 시를 읽을 때마다 상상 속의 물푸레나무의 이파리는 더 작아져만 갔다.

그런데 도시에선 잘 만날 수는 없지만, 외곽으로 빠지면 자주 접하게 되는 이 나무의 이파리는 버드나무보다 컸으며, 느티나무보다도 넓었다.

물론 우리에게 플라타너스로 알려진 양버즘나무나 마로니에로 불리는 칠엽수 나뭇잎보다는 작았지만, 물푸레 나뭇잎의 존재감은 결코 작지 않았다.

그런데 어쩌랴. 시가 가진 강력한 상징성은 물푸레나무를 직접 보고 난 뒤에도 변하지 않았다.

그 시를 읽을 때마다 그 ‘쬐그만’이란 단어는 여인과 물푸레나무 이파리 모두를 자그마하게 만들었다.

그런 물푸레나무를 도시에선 쉽게 만날 수가 없다. 고궁을 걷거나 교외로 빠져야, 그리고 관심을 가지고 바라봐야 겨우 눈에 들어오는 나무라고 할 수 있다.

고궁을 걷더라도 창덕궁 후원에 있는 정자인 ‘승재정’ 옆이나 창경궁 춘당지 옆 귀한 백송 앞에 서 있는 나무를 우리는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그 덕에 이 나무가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도 잘 모르고 지나간다.

우선 이 나무의 껍질은 안질 등 안과 질환이 발생할 때 처방약이 돼주었다.

물푸레나무는 재질이 강해 조선시대에는 무기와 농기구의 주재료로 사용됐으며, 특히 태형도구인 곤장을 이 나무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런 재질의 특성은 오늘에도 이어저 야구 배트와 밝은 색의 가구를 만들 때 주로 이용한다고 한다. 사진은 파주 교하에 있는 물푸레나무의 이파리 사진이다.
물푸레나무는 재질이 강해 조선시대에는 무기와 농기구의 주재료로 사용됐으며, 특히 태형도구인 곤장을 이 나무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런 재질의 특성은 오늘에도 이어저 야구 배트와 밝은 색의 가구를 만들 때 주로 이용한다고 한다. 사진은 파주 교하에 있는 물푸레나무의 이파리 사진이다.

껍질이나 가지를 꺾어 물에 넣으면 물이 파래져서 ‘물푸레’라는 이름을 갖게 됐고, 그 물이 안과 질환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당대의 사람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내용은 허준에게도 전달돼 《동의보감》에 “우려내어 눈을 씻으면 정기를 보하고 눈을 밝게 한다.

두 분에 핏발이 서고 부으면서 아픈 것과 바람을 맞으면 눈물이 계속 흐르는 것을 낫게 한다”고 적고 있다.

그 효과가 어떠한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세종과 광해군은 이 처방으로 안질을 치료한 기록이 남아 있다.

물푸레나무의 또 하나의 쓰임새는 근대적 형법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사법 질서를 세우는 기준목이 됐다는 것이다.

나무의 조직이 아주 단단해 봉건 질서를 유지했던 형벌 중 하나인 태형의 주인공, 즉 곤장이라는 도구를 만드는데, 이 나무를 사용했다.

오죽하면 버드나무나 가죽나무 등의 나무로 바꾸어 태형을 진행하니 죄인들이 제대로 자백하지 않는다며 물푸레나무로 다시 바꿀 것을 형조판서가 상소로 임금에게 고했을 정도였을까.

이러한 쓰임새 때문인지는 몰라도 《조선왕조실록》에도 물푸레나무는 다섯 차례나 등장한다.

오늘날의 시인들은 물푸레나무에서 잊을 수 없는 사랑하는 여인을 떠올리고 물푸레나무 옆에서 물푸레를 몰랐다는 자기 고백을 남기고 있지만, 조선 시대를 산 사람들에게 이 나무는 잔혹하기 그지없는 존재이면서 눈 치료에 꼭 필요한 야누스 같은 나무로 다가왔을 듯싶다.
 
어찌 됐든 이러한 나무의 물성은 곤장에 그치지 않고 무기를 만드는 데나 몽둥이, 그리고 농기구로도 이어졌다.

그래서인지 물푸레나무는 100년을 넘는 노거수가 흔치 않다. 보이는 족족 필요한 물건을 만들었으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느티나무나 은행나무는 조금 나이를 먹었다고 하면 500년은 훌쩍 넘은 나무들이고 천연기념물에 등재될 정도면 1000년을 가야 명함을 내밀 수준인데, 물푸레나무 중에 노거수로 천연기념물이 된 나무들은 많은 것이 300년 정도된 것이다.

천연기념물에 등재된 파주 무건리 물푸레나무는 군부대 안에 있어 민간인 출입이 불가능한데 이 나무는 190년쯤 나이가 됐고 이후에 발견된 화성 전곡리 나무는 350년 정도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나무의 타고 난 성질 때문인지 아직도 우리는 이 나무를 애용하고 있다. 야구 배트로도 만들고, 밝은 색상의 가구를 만들 때도 이 나무를 사용하고 있다.

재질이 강하다는 이유 하나로 이 나무는 지금까지 여러 쓰임새를 가지고 있다. 이젠 산길을 걷다가 이 나무를 만나면 반가워하자.

이 나무 덕에 프로야구를 즐기고 있으며, 식탁에서 편히 식사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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