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생의 은행 취업문, 바늘구멍조차 막혀"

하나은행 '2021년 여름 대학생 인턴 모집' 공고글(왼쪽)과 국민은행 '대학생 디지털 서포터즈 수시모집' 공고글.(사진=각사 채용홈페이지 캡쳐)
하나은행 '2021년 여름 대학생 인턴 모집' 공고글(왼쪽)과 국민은행 '대학생 디지털 서포터즈 수시모집' 공고글.(사진=각사 채용홈페이지 캡쳐)

<대한금융신문=안소윤 기자> 비용 절감 등을 이유로 신입 행원 공채문을 닫고 디지털 인재만 ‘핀셋’ 채용하고 있는 은행들이 금융권 대외 경험을 쌓으려는 청년 인턴에까지 디지털 소양을 선발 조건으로 앞세워 문과 취준생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14일 은행권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2021년 여름 대학생 인턴’을 모집하고 있다. 두 자릿수 규모로 선발할 예정이며 분야는 디지털 부문으로 한정했다.

하나은행은 몇 년 전만 해도 인턴십 모집에 4년제 정규대학을 4학기 이상 이수한 재학생이나 졸업생이라면 전공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모집 분야도 영업점 및 본부부서 업무를 지원하는 공통부문으로 총괄했다.

그러다 지난해 인턴십에선 모집 분야를 디지털, 자금·신탁, 기업금융·투자은행(IB)으로 범위를 한정하고 대분류 공학·자연계열 및 중분류 경영·경제 전공자만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올해는 지원자의 전공에 제한을 두지 않았으나, 모집 분야를 디지털 부문으로 국한해 사실상 공학 계열에만 문을 연 것과 다름없다. 디지털 전문성 보유에 대한 우대사항도 정보보안기사, ADP(데이터분석전문가), CISSP(보안전문가) 등 수준 높은 자격증을 요구한다.

이번 인턴십에서 추구하는 인재상 역시 ‘선도적인 디지털 전환을 통해 하나은행을 데이터 기반 정보회사로 만들어나갈 인재’로 명시했다.

IBK기업은행도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11일까지 체험형 청년(만 19세 이상 만 34세 이하) 인턴을 신청받았다. 모집 분야는 금융 일반(영업점 업무지원)과 디지털 부문(디지털 사업 운영지원)으로 나눴으며 각각 210명, 40명씩 뽑을 예정이다.

기업은행은 디지털 부문 인턴을 별도로 선발하면서도, 금융 일반 분야 지원자의 디지털에 대한 관심도와 역량이 어느 정도 갖춰졌는지를 중점 있게 평가했다.

금융 일반과 디지털 부문의 지원서 자기소개 질문은 5가지로 같았으며 이 중에는 경험해 본 가장 혁신적이거나 편리했던 디지털 금융서비스에 관해 설명하고, 개선점을 기술하는 문항이 포함됐다.

KB국민은행의 경우 지난 2018년부터 인턴십 제도 대신 ‘대학생 디지털 서포터즈’를 운영하고 있다. 모집 기간은 따로 없고, 지원자가 원하는 지역에 지원서를 등록해두면 해당 지역에서 인력이 필요할 시 담당자가 적합한 지원자에게 면접 채용을 안내하는 수시채용 방식이다.

자격요건은 국·내외 전문대학 이상 재학생 또는 휴학생이며 나이 제한이 없다. 주요 업무는 고객 디지털 서비스 체험 확대 및 이용 활성화를 유도하는 디지털 홍보대사 역할 수행이다.

이들 중 ‘Liiv M(리브 엠) 매니저’로 분류되는 디지털 서포터즈는 국민은행 내점 고객 중 고령자, 장애인 등 디지털 소외계층과 법인 고객을 대상으로 리브 엠 가입 상담 및 신규모집, 개통지원 등 특화된 통신 업무를 소화한다.

디지털 서포터즈 제도를 두고 일부 취준생들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대외활동을 하는 건 은행뿐 아니라 금융권 취업에 도움 되고자 함인데, 디지털 서포터즈 활동 이력은 타 은행 인턴십보다 금융 실무업무 경험을 어필하기엔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것.

특히 디지털 서포터즈 모집이 영업점 텔러와 비슷한 빠른창구 업무(입출금, 제신고 등)를 보는 자리보단 통신업 업무에 집중된 리브엠 매니저 중심으로만 선발이 이뤄지고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

금융권 취준생 A씨는 “은행 인턴십을 수료하면 서류, 필기 전형 면제 등 은행 면접에 특혜를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활동 이력으로 저축은행, 증권사 등 금융권 취업에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인턴십에서조차 디지털 소양을 강조하는 분위기에 문과생들은 ‘마지막 희망’으로 불리던 은행권 취업을 위한 대외활동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은행권 관계자는 “급속한 시대흐름 변화에 맞춰 디지털금융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부문 인재 양성이 필요하다”며 “인턴 제도 역시 준비된 신입 행원을 선발해내기 위한 과정인데, 체험형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채용 트랜드를 배제할 순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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