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사장단 회의 결과 “강력히 반대”
금융위 “업권 간 이견…단기적으론 안 돼”

출처=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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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금융신문=강수지 기자> 퇴직연금 계좌를 활용한 ETF 구매를 둘러싸고 은행과 증권간 치열한 알력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 우리은행 등은 퇴직연금 계좌를 통한 실시간 ETF 매매 시스템을 준비 중이다.

퇴직연금 계좌를 통한 ETF 투자는 현재 증권사에서 만든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 계좌와 개인형퇴직연금(IRP) 계좌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은행의 경우 ETF를 실시간으로 거래할 수 없기 때문이다.

ETF 논쟁과 관련한 한 실무 관계자는 “금융위원회는 기본적으로 금융정책과 관련해 전업주의에 따른 인가정책을 펼치고 있다”며 “은행업과 증권업 간의 충돌 발생을 의식해 은행의 ETF 매매를 반대하는 쪽으로 입장이 정해진 것으로 해석된다. 때문에 관련 사안을 계속 미루고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전업주의란 은행·증권사·보험사 등이 각각 해당하는 고유의 서비스만을 수행하도록 전문화하고 다른 금융 업무에 관계하는 것은 철저히 제한하는 제도를 말한다.

금융당국은 현재 은행의 ETF 매매와 관련해 공식적인 의견을 내놓고 있지 않다. 은행이 은행연합회를 통해 ETF 매매를 향한 강력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으나 묵묵부답이다.

금융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은행의 ETF 매매 부분은 업무 영역에 있어서 증권사와 충돌을 야기하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된다고 볼 수는 없다”며 “업권 간의 이견이 있어 신중한 문제다. 아직 검토한 것은 없고, 검토를 하느냐 마느냐의 상황도 아니다. 또 검토 기한 역시 의무적으로 기한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고 말을 아꼈다.

업권 간 충돌 예상에도 ETF 주장하는 ‘은행’

현재 증권사들은 강력히 반대하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증권사 고유의 투자중개업이라는 판단에서다. ETF는 펀드임에도 주식처럼 실시간으로 쉽게 사고 파는 게 가능해 투자자들이 많이 찾는 상품이다. 따라서 판매채널을 은행과 공유해야 하는 것은 증권사 입장에서 탐탁치 않다.

증권사 사장단 회의에서도 이 같은 반대 논리가 주를 이룬다. 계열 은행이 존재하는 증권사의 경우 적극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하진 않는다. 다만 증권업계의 의견을 따라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단 게 실무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은행은 금융투자업계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퇴직연금 계좌를 통한 ETF 매매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다.

은행업 관계자에 따르면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의 주도로 각 은행들이 ETF 매매 시스템을 이미 준비 중이거나 검토에 들어갔다.  

증권사와 은행의 서로 다른 입장 사이에는 법률적인 부분에 대한 해석의 차이도 있다.

실시간 ETF 거래를 투자중개업으로 보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다. 또 투자중개업으로 볼 경우 라이센스를 따로 따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의 부분도 있다.

은행의 한 관계자는 “신탁 상품을 통해 은행은 이미 ETF를 판매해 왔다. 은행의 퇴직연금 계좌를 통해 고객이 ETF를 직접 사고 팔게 하려는 게 과연 금융위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할 문제인가”라며 “내부적으로 법률 검토를 진행한 결과 ETF도 펀드이기 때문에 위법은 아닌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이에 증권사 관계자는 “내부적인 법적 논리에 따른다면 금융당국으로부터 인가를 받는 것은 의미 없지 않는가”라며 “은행 계좌를 통해 실시간으로 ETF를 매매할 수 있게 되면 실질적으로 은행이 증권업을 영위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법으로 판단된다”고 반박했다.

은행의 ETF 매매가 야기하는 부작용

금융투자업계에선 만일 은행 계좌를 통해 ETF 매매를 할 수 있게 된다 해도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다고 지적한다.

우선 매매 시스템의 안정성 부분이다. 증권사의 경우 이를 전문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수십년의 노하우를 갖고 있다. 유지·개발 비용 또한 막대하게 투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권사의 홈트레이딩시스템(HTS)과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의 전산 사고는 끊이지 않는 현실이다. 은행의 시스템이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또 은행이 개발 중인 시스템은 증권사 시스템과 5분 간의 시차가 벌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곧 고객들의 투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논란을 낳는다.

은행권에서는 5분 간의 간격을 크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지만, 증권업에서 5분은 굉장히 크다.

이밖에 은행은 예·적금을 통해 고객에게 안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는 만큼 은행의 ETF 매매 시스템이 투자자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로 인한 피해 사례가 발생할 경우 개인의 선택에 의한 투자임에도 보상을 요구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란 우려에서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ETF를 찾는 투자자들이 많아지면서 은행도 실시간 ETF 매매 시스템에 욕심을 내고 있지만 증권사에선 반발이 심하다”라며 “은행이 원하는 방향으론 되지 않을 것으로 업계 의견이 팽배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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