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25 14:55 (일)
사대부는 물론 불가에서도 사랑한 꽃 ‘모란
사대부는 물론 불가에서도 사랑한 꽃 ‘모란
  • 김승호 편집위원
  • 승인 2021.06.21 10: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봄의 절정에서 화려하고 농염한 꽃 피우며, 부귀영화를 상징
더 피어 있어도 되는데, 연연하지 않으며 ‘후둑’ 떨어지는 꽃
화왕이라고 불리는 모란. 올 4월 예산 추사고택에서 찍은 모란이다. 창덕궁 등의 궁궐은 물론 사찰에도 모란은 있다. 사진 중앙의 석물은 김정희가 만든 해시계이다
화왕이라고 불리는 모란. 올 4월 예산 추사고택에서 찍은 모란이다. 창덕궁 등의 궁궐은 물론 사찰에도 모란은 있다. 사진 중앙의 석물은 김정희가 만든 해시계이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모란은 ‘화왕’, 즉 꽃 중의 왕이라 불린다.

화려한 붉은 빛은 중국인들을 사로잡았고, 신라 때 한반도에 건너온 뒤에는 이 땅의 사람들을 유혹했다.

사대부는 물론 승려들도 이 꽃을 즐겨 보려 해 자신의 거처에 이 꽃을 심어 봄꽃의 절정을 누렸다.

매화와 벚꽃이 떨어지고 열매를 맺어가면 모란이 피기 시작한다. 여염집은 물론 사찰과 궁궐에서도 붉은색 혹은 자줏빛의 모란은 큼지막한 꽃을 피우고 사람들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낮은 키의 나무에서 핀 꽃은 한껏 따뜻해진 봄의 햇살을 받아 농염하기도 하고, 잎보다 먼저 핀 꽃들이 떠난 무대에서 위엄과 품위를 보여준다.

그래서 동양의 선비와 처사들은 이 꽃에 매료되었으며, 이 꽃을 통해 봄을 만끽했다.

어디 여기서 끝이겠는가. 시절은 8세기의 중국, 유일한 여자 황제였던 당나라의 측천무후는 긴 겨울의 끝을 고하고 따뜻한 봄을 그리워했는지 겨울의 끄트머리에서 꽃을 희망했다.

그래서 간밤에 꽃을 피우라 명령을 내리고 나무에 새겨 걸어두고 결국 다음날 꽃을 보게 되는데 모란만 피지 않아 이 꽃을 낙양으로 보냈다고 한다.

무소불위의 권력은 자연을 일깨워 꽃을 피워 냈지만, 그 권력 앞에 무너지지 않고 모란만큼은 자연의 순리를 따랐고, 그 결과 낙양으로 보내져 ‘낙양화’라는 별칭을 갖게 되었다. 아름다우면서도 고결한 모습은 지는 모습에서 완결된다.

영랑은 자신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에서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테요”라고 노래한다.

조금 더 피어 있어도 좋으련만 이 꽃은 흐트러짐 없는 완벽의 상태에서 미련 없이 꽃자루를 떠난다.

이처럼 큰 꽃잎이 흩어지는 모란의 모습은, 그래서 짧은 이별이 고고한 이유임을 확인하게 한다.

그래서일 것이다.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의 시 ‘매화(買花)’라는 시에는 다음의 내용이 등장한다. 백거이는 “모두들 모란의 계절이 왔다며/줄지어 꽃을 사러 간다”며 상춘의 모습을 그리는 한편 “한 포기 짙은 색 모란꽃이/중농 열집의 세금이로다”라며 이 꽃에 빠져 열병을 앓고 있는 당대의 사람들을 비판한다.

안동 도산서원은 퇴계의 손길이 가득 담긴 공간이다. 서원을 오르는 길 양편에는 퇴계가 좋아했던 매실과 모란이 연이어 심어져 있다. 사진은 별모양의 열매를 맺고 있는 모란이다.
안동 도산서원은 퇴계의 손길이 가득 담긴 공간이다. 서원을 오르는 길 양편에는 퇴계가 좋아했던 매실과 모란이 연이어 심어져 있다. 사진은 별모양의 열매를 맺고 있는 모란이다.

화려하면서도 자존감이 듬뿍 담겨 있는 이 꽃에 당나라는 광풍에 휩싸인다. 집안의 정원은 물론 사원과 공공기관의 앞뜰에는 경쟁적으로 모란이 심어졌다.

그리고 이 꽃들을 대상으로 경연대회를 열었고, 이 대회에서 우승한 모란의 가격은 집 한 채 가격을 호가했다고 한다. 가히 그 인기를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한 마디로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광풍의 원조가 당나라의 모란열풍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런 특징을 가진 모란을 동양에선 부귀의 상징으로 여긴다. 집안에 모란을 심는 것으로도 부족해 모란을 담은 그림 한 점 집안에 들이려 했고, 그래서 추사의 제자 소치 허련은 한때 ‘허모란’이라 불릴 만큼 모란 그림을 자주 그렸다고 한다.

이 그림을 산 사람들은 당시 부를 축적했던 중인들이다. 사대부를 넘어 중인에 이르기까지 모란을 흠모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불가에도 이어진다. 시인 조지훈의 ‘고사(古寺)’라는 시를 살펴보자. “부처님은 말이 없이/웃으시는데/서역 만 리 길/눈부신 노을 아래/모란이 진다.”

봄이 무르익어가는 계절, 그것도 눈부신 노을 아래 ‘후둑’ 떨어지는 산사의 모란꽃. 이렇게 사랑해서일까.

사찰의 단청에는 모란문양도 포함돼 있으며, 대웅전 법당 안에 안치된 불상의 방석에도 모란 모양은 수놓아져 있다.

암수한그루의 모란은 이 계절이 되면 별 모양의 열매를 맺는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되며 길쭉하고 다 익으면 황갈색이 되는 열매다.

다 익으면 열매가 터지고 그 안에서 황갈색의 씨앗들이 터져 나온다.

한편 서양에서 모란은 의사를 의미하는 ‘페오니’로 불린다. 신화를 보면 아폴론이 트로이전쟁에서 다친 신들을 이 꽃으로 치료해주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