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삶 같이 해 온 막걸리,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행사 가져
유청길·이상균 대표, 시민들과 함께 누룩 및 막걸리 빚기 체험

지난달 26일 문화재청 주최로 수원 화성행궁에서 ‘막걸리 빚기’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기념행사를 가졌다. 사진은 행사 중에 시민들이 직접 막걸리 빚기 체험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달 26일 문화재청 주최로 수원 화성행궁에서 ‘막걸리 빚기’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기념행사를 가졌다. 사진은 행사 중에 시민들이 직접 막걸리 빚기 체험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발효 음식은 공동체의 생활 방식과 문화를 고스란히 담아낸 공동체의 고갱이 같은 존재다.

그중에서도 발효 음료는 공동체의 희로애락을 빠짐없이 경험하며 공동체의 서사를 써 내려가게 만든 최고의 매개물이다.

그래서 발효 음료는 공동체의 모든 흔적이 녹아 있는 전통이자 문화적 구성요소이기도 하다.

세계의 발효 음료들이 모두 그렇듯이, 우리의 발효 음료인 막걸리도 종교적이며 제의적인 영역에서 시작한다.

제천의식에서부터 공동체의 제사 의례에 이르기까지 빠짐없이 등장했던 막걸리는 제의적 대상에게 숭모의 뜻을 충실히 전하는 전달자였으며, 공동체 구성원의 관계를 이어주는 가교이자 삶에 생동감을 실어주는 활력소가 되어 주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발효주는 공동체가 같이 즐기는 음료로 자연스레 집단무의식 속에 파고들었으며, 그렇게 문화적 구성요소로 발전하면서 오늘까지 연연히 이어져 오고 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은 물론 인생의 중요한 분기점마다 같이 호흡하면서 말이다.

‘막걸리 빚기’가 지난달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이를 기념해 지난달 26일 수원 화성행궁에서 문화재청 주최로 기념행사가 열렸다.

또 같은 기간 전국 26개 양조장에서도 1,500여명의 시민들이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을 축하하며 막걸리 빚기 등의 체험행사를 가졌다.

김현모 문화재청장은 이날 개회사에서 “막걸리는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열쇠”라고 말했다. 발효 음료의 특징을 적확하게 집어낸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일제강점기와 산업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한 때 전승의 위기에 직면했지만, 양조장은 굳건히 막걸리를 지켜냈다”고 막걸리의 현대사를 짧게 정의했다.

막걸리는 물과 누룩, 그리고 쌀로 빚어진다. 누룩은 지역에 따라 모양과 두께 등이 다른데, 사진은 부산 금정산성의 누룩이다. 앞에서 누룩을 가리키는 사람이 금정산성막걸리의 유청길 대표이다.
막걸리는 물과 누룩, 그리고 쌀로 빚어진다. 누룩은 지역에 따라 모양과 두께 등이 다른데, 사진은 부산 금정산성의 누룩이다. 앞에서 누룩을 가리키는 사람이 금정산성막걸리의 유청길 대표이다.

이처럼 막걸리를 빚는 문화가 국가무형문화재가 된다는 것은 막걸리가 가진 술의 기능을 넘어서 공동체가 살아오면서 축적한 다양한 에토스를 현재를 사는 사람들에게도 문화로 전달하는 의미를 지닌다.

특히 발효 음식의 개체 수만큼 우리는 미식의 다양성을 체험할 수 있고, 각 음식이 쌓아온 스토리텔링 속에서 공동체가 견지해 온 정신을 공유하게 된다.

예컨대 수원 화성행궁에서 시민들이 체험한 유청길 부산금정산성막걸리 대표의 ‘산성누룩’은 단순히 막걸리를 만드는 발효제에 그치지 않는다.

얇고 둥근 피자 반죽 모양의 누룩은 무더운 남쪽 지방의 기후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공학적인 상식을 알게 되는 기회이자, 양곡 관리 정책으로 한 때 밀주 단속을 피해 누룩을 팔러 나갔던 금정산성 어머니들의 슬픈 이야기를 공유하는 문화체험이기도 하다.

파쇄한 통밀에 물을 넣어 질겅거리는 반죽을 발로 디뎌 본 사람은 발끝으로 느껴지는 통밀 반죽의 질감을 기억하며, 막걸리를 떠올리고, 누룩 빚기를 체험한 그 날의 추억을 막걸리에서 찾아낼 것이다.

또한 전통주연구개발원 이상균 원장과 함께 찹쌀막걸리 빚기를 체험한 김현모 문화재청장은 물론 수원시의 국회의원과 함께 참여한 시민들은 막걸리를 볼 때마다 고두밥과 누룩가루, 그리고 소량의 물을 넣어 쌀알이 터지지 않게 고르게 치댈 때의 물컹거리는 질감을 손과 눈과 머리로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다 익은 막걸리를 걸러 마시면서 새콤달콤한 막걸리 원주의 맛을 보면서 시판되는 막걸리와의 다른 점을 확인하게 되고, 그러면서 막걸리 세계의 다양성까지 체득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발효 음료, 더 넓게 발효 음식은 매 순간 새로운 미식의 가능성을 열어주면서 새로운 에피소드를 축적하게 된다.

‘막걸리 빚기’의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은 그런 점에서 가양주를 금지했던 권위주의 정부와 달리 다양성을 존중하는 시민들을 열린 세계로 인도하는 길라잡이가 돼줄 것이다.

직접 술을 빚는 시민들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지 않아도, 더 많은 사람이 막걸리를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될 것이며, 가양주 전통을 가진 다수의 생산자가 시장에 진출하는 기회를 만들어 줄 것이다.

그 결과, 국산 농산물 소비 촉진은 물론 창업과 새로운 일자리 창출까지 기대 이상의 산업 연관효과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순기능과 미식의 다양성을 포함한 다채로운 스토리가 축적되면서 ‘막걸리 빚기’는 세계에 자랑할 소중한 문화유산이 될 것이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될 것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 ‘막걸리여 영원하라!’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