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사전지정운용(디폴트옵션) 제도에 원리금 보장형 상품을 포함시킬지 여부를 두고 증권업계와 보험업계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가입자를 위한 대립보다는 밥그릇 싸움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비판이 들려온다. 

디폴트옵션은 가입자가 운용지시를 내리지 않은 개인책임(DC)형 퇴직연금을 금융사가 가입자 투자 성향에 맞춰 운용해줄 수 있는 제도다. 

보험업계는 디폴트옵션 제도에 원리금 보장형 상품을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익률도 중요하지만 안전성이 더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증권업계는 원리금 보장형 상품을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디폴트옵션 도입 이유가 수익률을 끌어올리기 위함인데 도입 취지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입장이다. 

업계 갈등이 지속되면서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도입 법안은 1여년째 국회를 계류 중이다. 그러는 사이 230조원에 달하는 자금은 1%대 ‘쥐꼬리’ 수익률을 내는 원리금 보장형에 묶여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DC형 적립금의 89.3%(228조1000억원)가 원리금 보장상품으로 운영되고 있다. 원리금 보장형의 최근 5년 수익률은 1.78%로 실적배당형(4.17%)과 차이가 있다. 

퇴직연금이 노후를 위한 준비금이란 점을 되새겨 보면 보험과 증권업계의 주장 모두 틀린 말이 아니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할 때 수익률을 따지지 않을 수 없고 원금 손실을 생각하면 안전성을 배제시킬 수 없다. 

아쉬운 대목은 두 업계의 논쟁이 점점 가입자를 위한 고민보다는 밥그릇 싸움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점이다. 

보험사 입장에선 디폴트옵션에 원리금 보장형 상품을 포함시키면 가입자 이탈을 방지할 수 있다. 증권사는 원리금 보장형 상품을 포함시키지 않아야 은행·보험업계 가입자를 뺏어오기가 쉽다.

은행은 당초 디폴트옵션에 원리금 보장형을 추가할 것을 요구하다가 현재는 슬그머니 뒤로 빠졌다. 디폴트옵션에 원리금 보장형이 추가되면 가입자를 묶어둘 수 있고, 추가되지 않는다고 해도 TDF(Target Date Fund) 판매로 수익을 올릴 수 있어서다.

증권, 보험 모두 각각의 주장에 따라 나오는 우려에 대해서는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가입자를 우선한다면 증권업계는 안정성을, 보험업계는 수익률 제고를 위한 대안부터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