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째 72년 된 두륜산 앞 지역 양조장, 막걸리 3형제 양조
금융인 출신 한홍희 대표, 어머니 도움받아 새로운 술 개발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눈뜨기 술’을 아시나요. 물 댄 논에 모내기하러 들어가기 직전 몸을 덥히기 위해 마시던 술을 말한다.
모를 심는 날이든 제초를 하는 날이든 사람 손으로 직접 농사를 짓던 시절에는 새벽같이 일어나 일을 나섰고, 그러다 보면 여름이라도 식전이라 한기를 느꼈기 때문에 체온을 높이고 곡기도 채우기 위해 막걸리를 마셨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전남 해남의 삼산주조장의 2대째 대표를 역임하신 이중자(81세) 씨의 설명이다.
그래서 이중자 씨는 새벽 4시면 일어나 직원들의 밥을 준비하고 한편에선 눈뜨기 술 배달을 나가는 10명의 직원을 매일같이 챙겼다고 한다.
말통 막걸리를 짐 자전거에 한가득 싣고 이들은 논으로 배달을 나갔고, 그 술은 아침참이 나오기 전까지 그날 농부들의 일용할 양식이 돼 주었다고 한다.
그 시절의 막걸리는 지금처럼 알코올 도수 6도였다.
지난 1961년 23세의 나이로 양조장 집 며느리가 된 이중자 씨. 당시 양조장은 땅끝마을과 가까운 산정리(산정주조장)에 있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3대째인 한홍희(55) 대표가 귀향하기 전까지 58년간 막걸리를 빚으며 72년 된 이 양조장의 역사를 일궈왔다고 한다.
현재 양조장은 지난 1996년 두륜산 도립공원이 위치한 삼산면으로 이전해왔으며, 한 대표가 내려오면서 양조장도 새롭게 만들었다.
새로운 추세에 맞춘 막걸리를 생산하기 위해 양조장의 얼개 자체를 노동력이 많이 들어가지 않는 구조로 바꾼 것이다.
삼산주조장에서 만들고 있는 술은 3종류다. 알코올 도수를 달리해서 6도와 9도, 그리고 12도막걸리를 생산하고 있다.
6도는 예전부터 만들어오던 막걸리다. 여기에 최근 트렌드인 도수 높은 9도와 12도 막걸리를 새롭게 보탰다.
인근에 있는 해창주조장과 같은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물론 알코올 도수만 그렇지, 맛은 두 양조장이 확연하게 다르다.
단맛을 중심에 두고 있는 해창의 막걸리는 ‘막걸리 밥’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입안에서의 질감이 두텁지만, 삼산의 막걸리는 가볍다.
산미와 감미가 같이 올라오면서 목넘김도 편하다. 게다가 6도 막걸리는 당귀를 넣어 쌉싸름한 약재 맛이 같이 느껴진다.
금융인 출신의 한홍희 대표는 3년 전 귀향하면서 이처럼 다양하게 술을 갖춰야겠다고 생각했단다.
같은 해남 땅에 있는 해창주조장처럼 막걸리를 만들면 좋겠다는 주변의 주문을 적극 수용한 것이다.
게다가 더 이상 막걸리가 농주로서의 의미가 없는 상황에서 기존 마케팅을 고수하는 것이 지역 양조장의 전략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하게 된다. 그래서 어머니를 설득해서 새로운 술을 개발한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 이중자 씨는 고도주 막걸리에 대한 아픈 경험이 있었다.
“과거 불경기일 때 막걸리의 도수가 높아진 경우가 있지만, 도수를 높였을 때 오히려 막걸리 업계는 침체의 늪으로 빠졌다”는 것이 어머니의 기억이다. 그러니 고도주 막걸리를 만들자는 제안이 좋아 보일 리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기계가 사람 손을 대신해서 농사를 짓고 있고, 또 일하고 있는 농사꾼들마저 외국인들이 많아지니, 막걸리는 더는 농촌에서 찾는 술이 아닌 세상이 됐다.
어머니 이중자 씨도 이런 시장의 변화를 체득하고, 한홍희 대표의 새로운 술 설계에 자신의 노하우를 보탠다.
그리고 한 대표는 실패를 거듭하며, 현재의 술맛을 잡아냈다. 그것이 지난해 11월의 일이다.
6도의 막걸리는 쌀과 밀가루를 같이 사용하면서 당귀를 발효과정에 집어넣어 약향을 뽑아낸다.
그리고 9도와 12도의 막걸리는 찹쌀과 멥쌀을 같은 비율로 넣어 총 25일간 발효시켜 병입한다.
“술과 친구는 오래될수록 좋다”는 어머니 이중자 씨는 “그런데 한번은 제대로 술이 끓어야 맛이 난다”고 말한다.
그래서 삼산의 막걸리는 밑술 발효할 때는 높은 온도에서, 그리고 덧술 발효할 때는 낮은 온도에서 발효된다.
이 술도가의 술은 회나 무침 등 해산물 등과 잘 어울리는 듯하다. 취재 날 한 대표가 시음을 준비하며 내놓은 홍어삼합과 9도 막걸리는 좋은 페어링을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