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80조’ 상속·증여 잡아라…은행들 격돌

수수료 블루오션 ‘유언대용신탁’ 집중 공략 시장 점유율 갉아먹는 증권사 견제도 관건

2023-02-28     안소윤 기자

비이자 부문 성장에 목마른 은행들이 신탁 시장 공략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합리적인 재산 승계’를 원하는 소비자 트렌드에 맞춘 영업 포트폴리오 재정비로 분주한 가운데, 증권사의 시장 잠식까지 견제하느라 정신없어 보인다.

28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은행권에 누적된 신탁 잔액은 지난해말 기준 541조7491억원이다. 지난 2018년 435조1008억원에서 5년 새 24.5% 늘어난 규모다.

신탁은 고객이 맡긴 돈을 운용해 발생한 수익을 지급하고 운용수수료를 얻는 사업이다.

은행들은 신탁을 운영하면서 △계약보수(신탁재산가액의 0.5~1%) △집행보수(신탁재산가액의 0.75~1.5%) △관리보수(매년 탁원본평균잔액의 0.3~1%)를 받는다.

한번 유치하면 장기간 수수료를 쏠쏠하게 챙길 수 있다 보니 이자 이익 의존도를 낮추는 수익 다각화 전략으로 몇 년째 주력하고 있다.

특히 공들이는 부문은 ‘유언대용신탁’이다. 금융사가 고객이 살아있을 때는 자산을 운용해 수익을 돌려주고, 사후에는 미리 계약한 대로 증여하거나 상속할 수 있는 상품이다. 유언장을 남기지 않았더라도 신탁 계약서가 유언장과 같은 효력을 발휘한다.

사후 가족 간 상속 분쟁을 막고 싶은 이들로부터 매해 가입이 늘고 있으나, 아직까진 ‘블루오션’이다. 국세청에 신고된 상속·증여세 납부 기준으로 지난해 상속·증여재산은 80조2000억원에 달했는데 국내 유언대용신탁 시장 규모는 수천억원대에 그친다.

여기에 최근 금융당국에서 추진하는 금융혁신 과제에 신탁 시장 확대 방안이 포함되면서 은행들의 사업 강화 움직임에 더욱 탄력이 붙었다.

신한은행은 올해 ‘신한 SOL 유언대용신탁 상담예약 서비스’를 새로 도입했다. 고객이 원하는 날짜와 시간에 상담을 예약하면 신탁 전문가가 직접 전화로 상속, 증여 등 재산관리 상담과 유언대용신탁, 부동산증여신탁 등 상품 상담을 제공하는 비대면 서비스다.

우리은행은 지난 23일 ‘우리내리사랑신탁 파트너스’를 신설했다. 신탁을 활용한 안정적인 자산관리와 자산승계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전국 영업점에서 선발된 프라이빗뱅크(PB) 지점장으로 구성된 자산승계신탁 전문가 집단이다.

기존의 영업점 소개 영업과 세무·법률 전문인력에 의존한 수동적 마케팅 방식에서 벗어나 자산승계 심화교육과 연수를 통해 자산승계신탁 컨설팅 역량과 상담능력을 강화해, 직접 고객을 발굴하고 상담 및 사후관리까지 수행 가능한 전문판매인력으로 육성해 나갈 방침이다.

다만 시장에서 우위를 공고히 하려면 좀 더 빠르게 움직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금전신탁 부문에서 은행은 증권사과 치열한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관련 통계가 잡히는 지난 2010년 이후 아직까지 증권사 금전신탁 수탁고가 은행 규모를 넘어선 적은 없지만, 평균 48조원으로 벌어졌던 격차는 은행의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판매 규제가 도입됐던 지난 2021년엔 19조원까지 줄어든 바 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최근 상속 및 증여에 관한 관심이 커지면서 자산승계 컨설팅 전문판매 인력을 양성하고, 상품 라인업을 늘리는 등 보다 전문적이고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접근성과 편의성을 강점으로 신탁 시장서 입지를 공고히 해나갈 것”고 말했다.

대한금융신문 안소윤 기자 asy2626@kbank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