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부양 올인' 지주 회장님도 안사는 자사주
큰 손 모시러 직접 글로벌 세일즈 ‘저평가 방증’ 자사주 매입엔 인색
금융회사 수장들이 국내외 투자금 유치에 애쓰면서 정작 본인들 지갑은 좀처럼 열지 않고 있다.
전임 최고경영자(CEO)들이 투자자들에게 책임경영과 주가 부양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꺼내 들었던 ‘자사주 매입’ 카드가 약발이 신통치 않은 걸 보고 발로만 열심히 뛰는 중이다.
2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KB·신한·우리·하나 등 국내 4대 상장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 8명 중 올해 자사주를 매입한 건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정상혁 신한은행장, 이승열 하나은행장 등 3명이다.
진 회장은 지난달 23일 5000주(단가 3만4350원)를 사들였다. 지난 2018년 3월 부회장 시절 1000주를 담은 이후 5년여만의 매입으로 현재 총 1만8937주를 소유 중이다.
정 은행장은 지난 4월 4일 3700주(단가 3만5000원)을 취득해 총 8551주를, 이 은행장도 같은 달 5일 1000주(단가 4만600원)를 매입해 총 1100주를 갖게 됐다.
금융투자업계에선 금융회사 수장들의 뜸해진 자사주 매입 공시에 의아함을 표한다. 최근 ‘K-금융 세일즈맨’을 자처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지원에 힘입어 해외에 직접 나가 기업설명회(IR)를 진행하는 등 투자금 유치에 열 올리는 것 치곤 너무 소극적인 행보라는 관점이다.
통상 CEO들은 사업 포트폴리오 확장을 위한 국내외 ‘큰 손’들을 꾀어내기에 앞서 기꺼이 자신의 지갑을 털어 자사주를 매입한다. ‘저도 샀습니다. 그러니 저를 믿고 따라오세요’라는 액션을 취하는 거다.
금융투자 전문가들은 월가에서 실적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기는 게 자사주 매입 규모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자사주를 적극적으로 사들인 기업의 평균 주가 상승률은 지난 2020년 이후 S&P500 지수 상승률을 크게 상회하고 있으며, 이러한 기조에 맞춰 많은 기업이 자사주 매입 규모를 늘리고 있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전임 금융지주 회장, 은행장들도 저평가된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정기 주주총회를 전후해 자사주를 매입하고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전략을 취하곤 했다.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지난 2019년 완전 민영화를 이룬 후 재상장한 자사주를 16번에 걸쳐 꾸준히 매입, 퇴임할 땐 발행주식 총수의 0.01%에 해당하는 8만3127주를 소유했다.
김정태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도 자리에서 물러나기 전까지 당시 발행주식 총수에 0.02%(6만5668주)에 해당하는 자사주를 취득했었다. 역대 4대 금융지주 회장 가운데 가장 높은 자사주 보유율이다.
반면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은 지난 2019년 3월 1000주 취득을 끝으로 매입을 멈춘 상태며, 이재근 KB국민은행장도 지난 2022년 취임한 당해 1000주를 산 게 마지막이다.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 역시 지난 22년 3월 27일 취임 이후 자사주 매입이 없다.
올해 3월 자리에 앉은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도 아직 자사주를 매입하지 않았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은행주 특성상 ‘주가는 실적에 수렴한다’는 원칙이 안 통한다. 전임 수장들이 자사주 매입에 적극적으로 나서왔지만 기대만큼 주가 상승효과가 크지 않았던 탓인지 신임 수장들은 자사주 매입이 아닌 다른 주가 부양책을 고려하는 눈치”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은행업권 영업환경이 악화한 만큼 지주 회장, 은행장의 자사주 매입을 통한 투자시장 신뢰 확보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또 다른 은행권 한 관계자는 “내부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경영진이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은 주가가 자산과 실적에 비해 낮게 평가되고 있다는 걸 방증하는 전략”이라며 “특히 신임 CEO는 행보 하나하나가 이슈화되는 만큼 취임 초 자사주를 많이 사들이는 편인데 현 수장들은 시기를 놓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금감원장의 지원에 힘입어 수장들의 투자 유치 목적 해외 출장이 줄줄이 잡혀있는데, 본인은 사지 않는 주식을 어떻게 세일즈 하겠다는 건지 의문”이라며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쇼맨십이라도 보여야 할 때”라고 짚었다.
대한금융신문 안소윤 기자 asy2626@kbank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