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투자자여, 금융사에 전부 떠넘기지 마라
"우리를 투자자라고 표기하면 관련 보도자료나 인터뷰에 응하지 않겠습니다."
얼마 전 홍콩지수ELS 피해자모임에서 보내온 문자 메시지다. 보도자료 못 받고 인터뷰 못 하는 거야 상관없는데,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말이 거슬렸다.
어째서 투자자가 아닌가. 주가연계증권(ELS)은 명백한 투자상품이다. 금융사가 불완전판매를 저질렀다고 투자자라는 포지션이 바뀌진 않는다.
적어도 파두 투자자들은 자기들이 투자자임을 부정하진 않는다. 그래도 의아하다. 장기 성장성을 보는 기업에 단기 실적을 걸고넘어지며, 집단소송으로 주관사를 겁박한다.
이들에게 투자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익을 위해 자금을 배팅하는 행위엔 손실 위험이 따른다. 여기엔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의 책임이 필연적으로 동반된다. 그것이 모래알만큼의 크기라도 말이다.
억울할 것이다. 하지만 100% 금융사 책임으로 돌리기엔 궁색한 정황들이 있다. 홍콩ELS 투자자들의 재가입률은 90% 이상이다. 이들이 오랫동안 ELS에 반복 투자했다는 건 보수와 진보 언론을 막론하고 짚은 지점이었다.
피해자모임 위원장도 지난 2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를 인정하기도 했다.
ELS가 투자상품이 아니냐는 진행자 질문에, 위원장은 판매자 원칙부터 제대로 됐어야 했다고 반박했다. 판매자 원칙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은연중에 투자자 원칙을 축소·은폐하는 논리였다.
그건 옳지 않다. 판매자가 적합하게 상품을 팔아야 하는 만큼, 투자자 역시 이와 동등한 무게감으로 상품을 살펴야 하는 것이다. 지난달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홍콩ELS 분쟁조정기준안은 이런 기조를 최대한 반영했다고 본다.
파두 투자자의 경우 기술특례상장의 취지뿐 아니라 뜻하지 않게 바뀔 대외적 조건까지 고려했어야 했다.
이지효 파두 대표는 상장 직전 "기술특례상장이기 때문에 자랑할 만큼의 매출과 이익을 내진 않았다"면서도 "고객사를 확보해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2~3년 뒤 매출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기술력을 검증받았으니 장기투자 차원에서 시장에 뛰어들라는 의미인데, 어떤 투자든 변수가 작용하는 법이다.
지난해 예상을 벗어난 NAND(낸드) 반도체·SSD(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 시장의 침체가 파두 잘못인가. 그럼에도 파두 측은 기존 고객사와의 관계를 유지 중이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이는 주관사도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다.
배경이 이런데 떼쓰기와 음모론을 거듭할 생각이라면, 예금자보호법이 적용되는 자산관리를 하는 수밖에 없다. 조금이라도 위험해 보이는 투자는 냄새도 맡으면 안 된다.
기꺼이 리스크를 감수하겠다면 해당 투자에 대해 스스로를 완벽하게 설득시켜야 할 것이다. 그 과정은 무턱대고 금융사를 악마화하는 행위보다 훨씬 어렵고 복잡하겠지만 말이다.
대한금융신문 박이삭 기자 gija824@kbank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