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장 내면 금융사고…초대형 IB 좌절의 역사

초대형 IB 도전 밝히면 내부통제 부실이슈 직면 "단기 수익 집중" 부작용 CEO 인식 부족도 문제

2024-05-28     박이삭 기자

메리츠증권이 초대형 투자은행(IB) 도전을 공표하자마자 난관에 직면했다. 회사를 둘러싼 내부통제 이슈가 잇따라 불거지면서다.

이런 양상은 '평행이론'을 연상케 할 만큼 유사성을 띠고 있다. 작년엔 키움증권, 그 이전엔 신한투자증권과 하나증권 역시 취약한 내부통제로 초대형 IB 목표가 좌절됐다.

증권가는 금융 사고의 법적 책임을 명문화한 책무구조도 도입에 희망을 걸고 있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박모 전 메리츠증권 상무보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증재 혐의로 영장실질심사를 받았으나 전날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부하 직원의 도움으로 타 금융기관에서 1186억원의 대출을 받은 뒤 대가를 제공한 혐의였다. 그는 불구속 상태에서 추가 수사와 재판을 받을 예정이다.

앞서 박 전 상무보는 직무상 알게 된 부동산 정보로 100억원가량의 시세 차익을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해당 혐의는 공소시효가 지난 까닭에 영장 청구 범죄 사실에서 빠졌다.

서울중앙지검이 해당 인물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건 지난 22일이었다. 장원재 메리츠증권 대표가 컨퍼런스콜에서 초대형 IB 인가를 준비 중이라고 말한 지 8일 만이다.

이와 함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에서 건설사에 불리한 계약을 내민 회사 관행이 최근 밝혀지기도 했다.

메리츠증권의 초대형 IB 인가는 당분간 난망할 전망이다. 주된 인가 요건인 자기자본 4조원 말고도 내부통제 관리력이 요건에 포함되어서다.

이런 패턴은 과거에도 나타난 바 있다. 지난해 키움증권은 초대형 IB 인가를 받을 계획을 세워 놓았다. 그러나 라덕연 및 영풍제지 주가조작 사태로 인가 계획에 먹구름이 덮였다.

신한투자증권의 경우 지난 2019년 초대형 IB에 도전한다고 밝혔지만 라임펀드 사태가 발목을 잡았다. 하나증권도 2020년 초대형 IB 신청 의사를 발표한 뒤 일부 임직원의 선행매매 의혹에 휩싸였다.

증권업계는 침통한 가운데 고심이 깊은 모습이다.

금융투자협회 내부통제팀 관계자는 "각 사에서 내부통제 업무를 담당하는 이들과 대책 모임을 계속하고 있다"며 "회원사 얘기를 들어 보면 사익 추구와 관련해 내부적으로 한계가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단기 수익에 집중하는 데다 내부통제에 대한 인력·비용 투자를 많이 안 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최고경영자(CEO)의 인식 부족과 낮은 처벌 수준도 문제"라며 "책무구조도 도입을 담은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안이 7월에 시행되면 개선이 될 걸로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책무구조도란 임원 각자가 책임져야 하는 내부통제 업무 범위를 금융당국에 제출하는 제도다.

자산 총액 5조원 이상 증권사·운용자산 20조원 이상 운용사는 내년 7월까지 책무구조도를 제출해야 한다. 그 외 회사는 2026년 7월까지 제출하면 된다.

이에 발맞춰 금투협은 지난 9일 '내부통제 강화를 위한 개정 지배구조법 적용 연구용역 업체 선정' 공고를 올렸다. 책무구조도를 비롯해 표준화된 내부통제 기준을 세우고자 하는 목적이다.

대한금융신문 박이삭 기자 gija824@kbank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