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분쟁사례]
자진 상장폐지, 소액주주보호 문제없나
송태원의 쉽게 푸는 자본시장 13
사모펀드에 의한 자진 상폐
상장기업은 자본시장에서 자본조달이 용이하고 기업의 인지도도 높아 비상장 기업에 비해 더 많은 이점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에 거래소의 상장폐지 결정이 있는 경우 거의 모든 기업들이 상장기업으로 존속하고자 법적 쟁송에 나선다.
그런데 한편에선, 기업이 자진하여 상장폐지를 하는 사례들이 있다. 자진상장폐지는 기업의 신청에 의한 상장폐지다. 상장기업으로 유지하는 경우 소액주주의 경영권 간섭, 자본조달의 부진과 주식가치의 저평가, 공시의무 등의 부담이 있는데, 이러한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자진상장폐지를 하는 것이다.
예컨대, 인수금융을 통해 기업을 인수한 사모펀드(PE)의 경우 인수한 상장주식의 주가가 하락하는 경우 인수를 위해 담보로 제공한 대상회사의 주식가치, 즉 담보가치가 하락한다. 당초 LTV 비율을 맞추기 위해서는 추가 담보를 제공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올해(2024년) 자진 상장폐지 목적으로 공개매수절차가 진행된 쌍용C&E, 락앤락, 커넥트웨이브 등도 사모펀드가 자진상장폐지 결정을 한 사례들이다.
상폐 위한 대주주의 공개매수
거래소는 자진상장폐지시 투자자 보호를 위해 ‘최대주주 등이 공개매수나 장내매수를 하여 발행주식의 95% 이상올 보유할 것’을 요건으로 하고 있다. 이 비율을 맞추기 위해 주식 공개매수 절차가 진행된다.
공개매수란 자진 상장폐지를 결정한 기업의 대주주가 소액주주들이 갖고 있는 주식을 일정한 가격에 사들이는 것을 말한다. 공개매수는 시장가격보다 프리미엄을 붙여 가격이 결정되기 때문에 소액주주들에게 호재로 여겨지기도 한다.
실제로 한국ESG기준원이 지난 2010년 이후 진행된 24건의 자진상장폐지 관련 공개매수 사례들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공개매수 공고일 이전 1개월간 평균주가 대비 27.64%의 할증률로 공개매수가가 산정됐다.
그러나 일부 소액주주들은 공개매수 가격이 자신들이 평가하는 주식의 적정가치에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해 공개매수에 응하지 않고, 더 높은 금액을 얻어내기 위해 오히려 주식 매집에 나서기도 한다. 이른바 공개매수 가격을 더 높여야 응하겠다는 전략이다.
소액주주 축출 방지 위해 공정가격 기준 필요
회사의 주가가 일반투자자들이 판단하는 실질가치보다 낮게 형성된 경우 공개매수 프리미엄에도 불구하고 소액주주들은 공개매수에 쉽사리 동의하기 어렵다.
과거 차량 배터리 제조업체인 아트라스비엑스도 지난 2016년 자진 상장폐지 목적으로 두 차례에 걸쳐 공개매수를 진행했으나, 당시 주가가 기업의 미래 성장성 등 실질 가치보다 저평가됐다고 보아 주주들이 공개매수에 응하지 않은 전례가 있다.
공개매수 가격을 당시 시장가 대비 일정 프리미엄으로 정하는 지금의 관례는 공개매수 시점을 보다 낮은 비용으로 공개매수에 성공하기를 원하는 대주주 및 경영진들이 결정한다는 점에서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한다. 즉 시장가격에 의존하는 방식은 대주주와 소액주주들의 이해상충으로 일반 소액주주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델(Dell) 컴퓨터로 유명한 델사는 지난 2013년 상장폐지 결정을 하고 당시 주가인 9.35달러 대비 47%의 프리미엄을 더해 13.75달러로 공개매수를 진행했다. 일부 주주들은 사측이 제시한 시장가에 기초한 공개매수가를 다투며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2016년 델라웨어 형평법원은 사측이 제시한 13.75달러에서 28% 증액된 17.62달러를 공정한 주식가치로 결정했다.
델라웨어 형평법원은 시장주가에 기초한 공개매수가가 델의 공정한 가치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판단하고 시장주가는 아예 고려 대상에서 제외한 채 오로지 현금흐름할인모형(Discounted Cash Flow Model)에 의존해 공정가격을 산정한 것이다.
위 판결은 공개매수는 공정가격 가치에 의해 이뤄져야 하며, 공정가치의 결정은 향후 미래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등을 포함한 제반요소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공개매수 시기가 시장이 전반적으로 하락한 시기거나 회사의 실적 사이클상 하락 시기에 위치해 있거나 혹은 향후 낙관적인 전망을 앞두고 있는 경우에는 이러한 점을 모두 고려해 조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쉽게 말해 당시의 낮은 시장가격으로 공개매수를 진행하고 상장폐지를 해 폐쇄회사로 만든 후 회사내 유보된 이익잉여금으로 지배주주에게 대규모 배당을 한다면, 시장가에 기초에 공개매수가는 주식의 공정가치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배주주 충실의무 도입 고려 필요
자진 상장폐지는 전형적인 지배주주와 소액주주의 이해상충상황이다. 왜냐하면 지배주주는 상장폐지 시점, 공개매수 가격을 결정할 권한이 있고 소액주주보다 회사 정보에 대한 접근권이 높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 중인 상법 개정 논의에서도 지배주주에게 충실의무가 뜨거운 감자다. 지배주주의 충실의무는 회사의 이익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주주 간 이해상충 상황에서 지배주주에게 일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부여하자는 논의인데, 보다 권한이 많은 지배주주에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주주의 이익을 침해해서는 못하도록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다. 자진상장폐지시 소액주주들의 재산권 침해를 막는데 지배주주의 충실의무 법리가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