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명인체험 4]
“여름철엔 상추 넣은 시루떡이 제맛이에요”

제철 떡 손쉽게 만들 수 있게 체험 프로그램 진행 엿기름에 삭힌 ‘노티떡’과 ‘신과병’으로 명인 지정

2024-07-28     김승호 편집위원
전통떡 분야에서 처음 식품명인으로 지정된 김왕자 명인이 완성된 상추떡 앞에서 떡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상추는 여름이 제철이어서 집에서도 손쉽게 빚어 먹을 수 있는 떡이다.

‘상추떡’, 생소했다. 상추를 넣고 떡을 만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고기를 구어 먹을 때 함께 곁들이는 쌈채소로 상추의 쓰임새를 한정했으니, 떡의 재료는 언감생심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추떡은 일제강점기 때 출간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와거병’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꽤 오래된 음식이다. 고조리서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족보 있는 음식이었던 것이다.

이달 초, 대한민국식품명인협회 식품명인체험홍보관(관장 조윤주)에서 2012년 전통 떡 분야에서 처음으로 식품명인으로 지정된 김왕자 식품명인의 체험행사가 있었다. 식품명인으로 선정된 아이템은 북한 음식인 ‘노티떡’과 제철 과일을 넣어 만든 ‘신과병’이지만, 떡 만드는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도 많이 걸려 손쉽게 집에서도 만들 수 있는 상추떡으로 진행했다. 상추는 여름 제철채소로 혈액순환은 물론 열독을 풀어주고 이뇨작용에도 도움을 준다. 김왕자 명인은 푸른 상추가 상추떡을 만드는데 제격이라며 ‘오묘하게 어울리는 떡맛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말했듯 상추의 쓰임새를 쌈채소에 둔 사람들이 많으니 미리 떡맛을 예고한 것이다.

만드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잘 빻은 멥쌀가루를 조금 굵은 크기의 채(고유어 어래미)로 내리고 최대한 멍울이 없도록 고운 가루를 만든다. 여기에 기호에 맞춰 소금과 설탕을 넣어 간을 하고 다시 한번 채로 내린다. 물론 단 음식을 피하고 싶다면 설탕을 넣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곱게 내린 쌀가루는 공기와 수분이 균일하게 배합돼 떡을 만들면 보슬보슬한 질감을 갖게 된다.

쌀가루가 다 쳐지면 찜기(또는 시루)에 광목천을 깔고 거피한 팥고물을 먼저 찜기 바닥에 깐 다음 그 위에 쌀가루를 놓는 식으로 3~4단으로 올린다. 단을 쌓으면서 물기를 제거한 상추를 사이사이에 넣으면 된다.

그리고 물이 끓으면 찜기를 올리고 20분 정도 찌면 완성된다. 흔히 명절때 만드는 팥시루떡도 같은 방법으로 만들면 된다. 상추떡은 거기에 상추를 보탰을 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간단해도 요즘 집에서 떡을 만드는 사람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김왕자 명인의 이야기다. 만드는 방법이 어렵거나 복잡해서가 아니라 생활방식이 많이 바뀐 탓일 것이다.

‘노티떡’와 ‘신과병’ 부분에서 식품명인으로 지정된 김왕자 명인은 이달초 식품명인체험홍보관에서 상추떡 체험행사를 가졌다. 사진은 이 행사에 참여한 프랑스인과 함께 떡을 빚고 있는 김왕자 명인의 모습이다.

체험행사를 마치고 김왕자 명인에게 노티떡에 대해 질문했다. 처음 듣는 떡이름이기도 했고, 떡을 만드는 데 엿기름을 사용한다는 점도 독특했기 때문이다. 엿기름은 보리를 일부 발아시키다 정지시킨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쌀의 전분을 분해하는 효소가 있어서 엿이나 조청을 만들 때 이용하는 식재료다.

노티떡은 이 엿기름을 이용해 곡물반죽을 삭힌 뒤 떡으로 만드는 것이다. 엿기름은 앞서 설명했듯 곡물을 당화시키기 때문에 반죽은 더욱 단맛을 띠게 된다. 그리고 엿기름과 섞은 곡물반죽을 하루하고 한나절 가량 삭힌다. 이 과정에서 발효가 일어나 새콤한 맛을 갖게 된다. 그래서 발효가 끝난 반죽으로 만든 떡은 새콤달콤한 맛을 갖는다. 게다가 발효를 시킨 음식이다보니 장기 보관이 가능해진다. 장거리 이동을 할 때 비상식량으로 이용하거나 오래두고 먹는 간식거리였다는 것이 김 명인의 설명이다.

노티떡의 주재료는 수수, 차조, 찰수수, 찰기장 등의 곡물이다. 평안도 지역의 토속음식이니 쌀보다는 잡곡을 이용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한다. 김 명인은 대략 3일째 되는 날, 숙성한 반죽을 번철에 기름을 두른 뒤 얇게 지져서 떡을 만든다고 한다. 숙성이 잘 된 반죽이어서 모양을 잘 잡아가며 지져내는 것이 관건이다. 이처럼 시간이 많이 걸리는 떡이다보니 상시적으로 만들지 않고, 주문이 들어오면 만든다. 이 떡은 실향민에겐 고향의 추억으로 남겨진 음식이다. 황석영 작가는 <밥도둑>에서 어머니와 함께 떠올린 고향음식으로 ‘노티떡’을 회상하고 있다.

이에 반해 ‘신과병’은 만드는 과정이 간단하다. 포슬포슬한 멥쌀가루에 밤과 대추, 단감 등의 제철 과실을 넣고 녹두고물을 두둑하게 올려 시루에서 쪄내면 되기 때문이다. 이 떡은 《증보산림경제》와 《규합총서》에도 제조법이 실려 있다. 그만큼 조선시대에는 자주 만들어 먹던 음식이었던 것이다. ‘노티떡’과 ‘신과병’은 김왕자 명인이 경기도 과천시에서 운영하는 ‘홍익떡집’에서 다른 떡들과 함께 구매할 수 있다.

김승호 편집위원 skylink99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