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분쟁사례]
자사주 취득 및 처분, 밸류업 역행 않도록 원칙 마련해야

송태원의 쉽게 푸는 자본시장 15

2024-08-05     송태원 변호사
송태원 법무법인 해광 변호사

자본시장 밸류업 논의

정부는 지난 2월 상장기업의 가치를 높여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자본시장의 효율성을 제고하고자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밸류업 프로그램이란 쉽게 말해, 기업들의 주가를 올리고 투자자들에게 더 많은 수익을 안겨주기 위한 노력이다.

최근 시장에서 밸류업에 역행하는 기업들이 불공정 합병, 자진상장폐지로 시끄러운 상황이지만, 밸류업 논의는 아직 초기 단계로 구체적인 정책성과를 평가하기는 어렵다. 시장에서는 여전히 투명하고 공정한 기업 지배구조 확립, 배당 확대 등 주주환원 정책 강화 등에 관심이 높다. 금융지주사를 비롯해 일부 기업들은 파격적인 주주환원책을 제시하며 밸류업 경쟁에 나서고 있다.

주주가치 제고 수단, 자사주 취득

자기주식 즉, 자사주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식을 발행회사가 일시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을 일컫는다. 자사주 취득은 출자환급의 위험이 있어 주식회사 제도의 본질에 반한다는 논란도 있으나, 우리나라는 법을 통해 상장기업의 자사주 취득을 허용하고 있다.

자사주 매입은 배당과 더불어 대표적인 주주환원책이다. 배당은 배당소득세가 발생하는 반면 자사주매입으로 인한 주가상승시 얻은 시세차익은 과세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 할 수 있기 때문에 배당보다 더 효과적인 정책으로 알려져 있다.

기업의 내부정보에 대해 비교우위를 갖고 있는 경영진이 주식이 저평가돼 있다는 것을 자사주 매입 공시를 통해 시장에 알리면 해당 주식에 대한 투자수요는 증가해 주가가 상승하게 된다는 것이 재무학계의 일반적인 이론이다. 외국에서도 기업이 자사주매입 공시를 할 경우 큰 폭의 주가 상승이 나타난다.

밸류업 시장 분위기로 거래소에 따르면, 자사주 매입 규모가 지난해 상반기 1조8000억원에서 올해 상반기 2조2000억원으로 25% 이상 늘었다.

자사주 취득 공시 보완으로 투명성 강화 필요

그런데 우리의 자사주 취득은 외국의 사례와 다른 특성이 있다.

기업은 자기주식을 직접 취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신탁계약이나 자사주펀드를 통해 간접적으로 취득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제도다.

실제로 자본시장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올해 1분기에 자사주 매입과 관련한 공시를 한 상장사는 161곳이지만, 이중 직접 취득을 택한 경우는 47곳이고 114곳은 신탁계약을 통해 자사주를 취득했다.

자사주를 직접 취득하면 3개월 뒤 결과 보고서를 통해 이중 얼마를 처분했는지 처분내역을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하는데, 신탁계약을 통한 자사주 취득에서는 그러한 공시의무가 없다.

또한 신탁계약을 통한 자사주 취득의 경우 신탁계약 기간을 연장할 수 있는데, 신탁계약을 통해 자사주를 취득한 위 114개 기업 중 38개 기업은 신탁계약을 연장했다. 즉 자사주 취득 공시가 언제까지 자사주를 취득한다는 구속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적 허점은 불확실성을 키워 주가에 부정적 요인이 된다.

신탁계약 방식의 자기주식 취득이 직접 취득의 경우와 공시 제도가 달라 허점이 생기지 않도록 제도적 보완이 요구된다.

자사주 처분 밸류업 부합하도록 원칙 필요

또한 우리나라의 자사주 처분은 규제적 제약이 적다. 해외에서는 자기주식을 소각하거나, 설령 보유할 수 있더라도 자사주 처분을 신주발행에 준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주주평등 원칙을 적용하는 등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과 비교된다.

우리의 경우 자사주 취득 목적의 90% 이상이 주주환원이지만 소각에는 인색하다. 실제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은 전체 상장기업의 67% 이상인데 이 중 약 3%의 기업만이 자사주를 소각하였다.

기업은 자사주를 임직원 보상 목적으로 처분하거나, 교환사채 발행 등 기업 운영자금으로 활용한다. 자사주 매입으로 주가가 오를 것으로 예상해 주식을 매수했지만, 기업이 자사주를 다시 처분하면 주가도 하락세가 예상되기 때문에 밸류업에 역행한다는 지적이다.

한편, 일부 기업들은 자사주를 지배권 강화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자사주는 보유한 동안 의결권이 없지만 처분하는 의결권이 살아난다. 자사주 처분의 경제적 실질은 신주발행과 같은데, 경영권 분쟁상황에서 경영권 방어 목적의 신주발행은 일반주주의 신주인수권을 침해하여 무효이지만(대법원 2009. 1. 30. 선고 2008다50776 판결), 법원은 자사주 처분이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이루어지더라도 법률상 신주발행은 아니기 때문에 유효하다고 본다(서울고등법원 2015. 7. 16 선고 2015라20503 결정).

지배주주 지분율이 낮은 일부 기업은 애초부터 위와 같은 논쟁을 피하기 위해 경영권 분쟁이 없는 평상시 사업제휴 등의 명목으로 자사주 맞교환을 하여 우호주주를 확보하기도 한다. 이러한 방식의 자사주 처분은 회사의 재원으로 취득한 자사주를 지배주주의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이해상충 소지가 있다.

미국에서는 경영진이 자신 또는 특정 주주의 이익을 위하여 자사주를 처분하거나 충분한 가치가 보장되지 못한 채 자사주를 처분하는 경우 이사의 신인의무 위반으로 법적 책임을 진다.

국내에서도 주주환원 정책으로 이루어진 자사주 취득이 처분시 일반 주주가치를 훼손하지 않도록 원칙이 마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