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분쟁사례]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중심에 선 사모펀드

송태원의 쉽게 푸는 자본시장 18

2024-09-23     송태원 변호사
송태원 법무법인 해광 변호사

고려아연 분쟁사태의 배경

최근 주식시장에서 고려아연 주가가 연일 치솟고 최고가를 갱신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고려아연의 현 경영진과 영풍그룹간 경영권 분쟁이 있다. 국내 최대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가 영풍의 백기사로 나서면서 분쟁은 더욱 가열되고 있다. 경영권 분쟁이 발생하면 주가가 단기에 급등하던 경험치와 공개매수 기대감으로 개인주주들도 매수세에 나서고 있다.

원래 영풍과 고려아연은 장병희, 최기호 두 창업주가 설립해 2대에 이르기까지 별 탈 없이 장씨와 최씨가 영풍과 고려아연을 각각 지배해왔다. 더욱이 '고려아연->서린상사->영풍->고려아연'의 순환출자 관계에 있어 서로 우호적이었다. 그런데 2017년 정부가 순환출자 규제를 강화하면서 영풍의 장형진 고문이 서린상사가 보유하던 영풍 주식을 사 순환출자 고리를 끊으면서 장씨의 지배력은 커졌으나, 최씨의 지배력은 상대적으로 약화됐다.

그런데 최윤범 회장이 현재 경영하는 고려아연은 2차전지, 폐배터리 등 글로벌 친환경 에너지‧소재 기업으로 도약하며, 지난 2분기 영역이익이 2600억원을 넘어서는 호황을 누리는 반면, 영풍의 영업이익은 1억원으로 극히 대비되는 상황이다. 명목상 지분이 더 많은 영풍의 장형진 고문으로서는 고려아연의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하는 것이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사태의 핵심 배경인 것이다.

적대적 M&A, 순기능도 인정해야

영풍과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 사안에 적대적 M&A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MBK는 종전 최대주주로부터 바이아웃하고 일반 투자자 대상 공개매수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적대적 M&A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고려아연의 현 경영진 입장에서는 적대적 M&A이다.

사모펀드의 적대적 M&A에 대해서는 종래부터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과거 ‘SK 소버린 사태’의 경험이기도 하다. SK 소버린 사태는 2003년 외국계 헤지펀드인 소버린자산운용이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의 지분을 대량으로 매입하며 발생한 경영권 분쟁 사건이다. 소버린은 SK 지배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경영진 교체를 요구했고, 그 과정에서 주가는 10배 이상 급등했다. 그런데 소버린은 경영 참여 포기를 하면서 보유 주식을 전량 매각해 8000억원의 차익을 올렸다. 이에 헤지펀드는 먹튀 세력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적대적 M&A를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시장에 적대적 M&A 세력이 존재하는 경우 주주가치를 저해하는 지배구조를 견제할 수 있다. 즉 이사회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주주가치를 저해하는 경영의사결정을 견제하지 못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적대적 M&A가 ‘메기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사회 구성원인 이사의 경영감시는 단순히 회계, 재무 부분에만 미치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사업에서 높은 법적 위험이 예상되는 업무 전반에 미친다는 근래의 대법원 판결을 고려할 때 건전한 지배구조와 기업의 지속가능성에 있어 이사회의 기능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대법원 2022. 5. 12. 선고 2021다279347 판결).

현재 고려아연의 이사회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서로 간의 입장차로 공방이 있으나, 자본시장에서 적대적 M&A 세력의 존재는 분명 기업이 건전한 지배구조를 갖추게 하는 유인이 될 수 있다.

비이성적 주가 급등, 시장참여자 모두에 부담

경영권 분쟁 상황이 되면 주가는 급등한다. 서로 지분을 확보하려는 매수 경쟁으로 가격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또 공개매수를 진행하는 경우 시장 투자자들은 공개매수는 장외거래라는 특성상 20%가 넘는 양도소득세를 부담하기 때문에 프리미엄을 얻어 시장가보다 높은 가격에 매도하고자 한다. 이에 공개매수를 성사시키기 위해 주가는 더욱 높아지게 된다.

고려아연의 주가는 지난주 이미 MBK가 제시한 공개매수가를 넘어섰다. MBK가 공개매수 성공을 위해 매수가를 더 높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MBK는 지난해 말 한국앤컴퍼니 공개매수 사례에서 공개매수가를 더 높이는 정정신고서를 제출하고서도 기관투자자들이 응하지 않아 공개매수에 실패한 전례가 있다.

MBK 입장에서는 경영권 인수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영풍 측과 미리 주주간협약으로 안전장치를 마련해둬 손해볼 것이 없을 것이다. 한편 경영권 인수 또는 방어를 위해 펀드와 주주간 협약을 맺는 경우 주의할 점이 있다.

‘현대그룹 경영권 분쟁사례’가 참고가 될 수 있다. 현대그룹 경영권분쟁 사태는 현대그룹의 현정은 회장이 KCC그룹과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 분쟁을 벌일 당시 백기사로 등장한 스위스 엘리베이터 기업, 쉰들러가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확보한 후 경영에 개입하면서 시작됐다.

계열사 현대상선이 유동성 위기에 빠지고 경영권 분쟁이 생기자 현정은 회장은 현대엘리베이터를 통해 동원한 재무적 투자자들이 우호주주가 되게 했다. 이 과정에서 현대엘리베이터는 재무적 투자자들에게 현대상선 주가 하락시 손실을 보전해주는 파생상품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현대상선의 경영권 분쟁이 종료되면서 현대상선 주가가 급락하자 백기사로 등장한 재무적 투자자들은 엄청난 손실을 입었고, 파생상품계약에 따라 현대엘리베이터로부터 손해를 배상받았다.

이때 현대엘리베이터의 2대 주주로 있던 쉰들러는 현정은 회장과 경영진이 현대엘리베이터를 이용해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선관주의의무, 충실의무를 위반해 회사에 손해을 끼쳤다며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다. 9년간의 법적 공방 끝에 대법원은 현정은 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에 1700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대법원 2023. 3. 30. 선고 2019다280481 판결).

급등한 고려아연의 주가는 경영권 분쟁 상황이 소진되는 경우 급락할 수 있다. 이때 백기사로 참여한 재무적 투자자들은 손해를 안 보는 대신 분쟁 당사자들은 주가 급락에 따른 손해를 떠안을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일반 투자자들도 극심한 주가변동 리스크에 주의가 필요하다.